매일신문

[사필귀정] 부메랑

청와대의 주인이 되기 전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심은 대표적 이미지는 강한 추진력이다. 샐러리맨에서 시작한 그의 인생 역정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회의원으로서는 화려하지 못했지만 서울시장 시절 그의 추진력은 빛났다. 정치적 기반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강한 이미지를 높이 산 한나라당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고 국민들도 같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최대 강점인 추진력이 지금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 이후 다시 청와대와 정치권의 소통 부재가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여권 내 충돌과 갈등은 일단 청와대와 여의도의 소통이 충분치 않다는 점을 드러냈다. 낙마한 감사원장 후보자의 항변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공직자로서 어느 누구보다 허물이 적었던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낙마는 개인적 결함 때문이 아니다. 그를 선택한 분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정치의 속성을 간과한 탓이다.

감사원장 후보자의 낙마는 이미 전례가 있다. 감사원장으로서의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사유도 같다. 야당 시절 여권을 흠집 낸 칼이 입장이 바뀐 여권에 되돌아온 것일 뿐이다. 한입으로 두말을 하고서는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과거 전례를 몰랐다면 무지의 탓이고 알고서도 무시했다면 기본을 무시한 일이다.

살다 보면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일들이 많다. 정치 현장에도 부메랑 현상이 확연하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는 예가 수두룩하다. 부동의 차기 대통령으로 꼽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도덕성으로 입지를 세웠지만 진실과는 무관한, 도덕으로 포장한 공격에 치명상을 입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식 없이 진솔한 말로 일약 스타가 됐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권력을 대중에게 돌리려는 그의 말과 행동은 대통령이 된 이후 다른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의 가슴에 절절하게 다가오던 솔직한 그의 말과, 권위주의적 권력을 대중 속으로 낮춘 행동은 품위 없는 것으로 격하됐고 그를 궁지로 몰았다. 최대의 장점이 치명적 약점으로 돌변한 것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물러나는 권력과 다시 살아남아야 할 권력의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은 눈높이가 같지 않다. 생존 여부에 있어 동지적 관계는 우선순위가 밀린다. 서로 다른 시선을 이해하고 조정하지 않고서는 같은 배를 타기가 거북해진다. 당연히 소통이 제일의 과제다. 정치는 변수가 끊이지 않는다. 변화무상이다. 변수로 인한 돌발사태를 최소화하려면 소통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대통령의 말처럼 임기 말까지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제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장점을 보완해야 한다. 추진력이란 장점이 지닌 약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잠복된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크다.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별개일 수도 있다. 단점을 보완하는 일은 강렬한 장점의 그늘에 가려 말처럼 쉽지 않다. 단점의 보완이 아니라 장점의 힘을 낮추어야 한다. 권력과 권한은 나눌수록 안전하다.

장점이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음은 정치인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벌써부터 차기 대권 후보들에 대한 말들이 나온다. 저마다 자신의 장점과 정치적 소신을 알리려 한다. 그러나 아직은 스스로나 상대의 단점에 대한 말은 조심스럽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가장 주목받는 후보다.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 그의 지지율은 독보적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갈수록 늘어난다. 그가 가는 곳은 북새통을 이룬다. 그의 말 한마디는 중요 뉴스가 된다. 소신과 깨끗함의 이미지도 강력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몰리면 골치 아픈 일도 많아질 수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 이미지는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대중은 자신보다 너무 우뚝한 사람을 마냥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직 다음 대선까지의 여정은 멀다. 과정마다 이기려면 도전도 만만찮다. 지면서 이기는 길도 있다. 최대의 장점이 치명적 약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정치의 논리는 유권자들이 누구를 선택할까의 잣대로도 활용해 볼 만하다.

徐泳瓘(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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