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달려라 토끼

'토끼라는 별명을 가진 주인공은 학창 시절 농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스타였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세일즈맨으로 처자식을 거느리고 살게 된다.

그러나 지난날의 화려한 명성을 그리워하며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무단 가출을 시도하고, 낯선 여자와 동거에 들어가기도 한다. 가족들과 목사의 인도로 다시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더욱 큰 소외감을 느끼면서 또다시 가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숙명과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집을 뛰쳐나온 그를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구속이었다. 지난날 동거했던 밤거리의 여자가 임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여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또다시 도망치듯 어둠 속을 달린다.'

미국의 소설가 존 업다이크가 196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의 내용이다. 제목이 '달려라 토끼'인 이 소설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탈한 삶을 통해 획일화된 일상 속의 개인적인 고독과 방황을 리얼하게 그렸다.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은 당시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토끼의 해인 신묘년(辛卯年) 새해 벽두에 이 소설의 제목이 '달려라 토끼'임에 주목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토끼와 관련된 이야기는 부지기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토끼는 다양한 캐릭터로 등장을 한다. '토끼와 거북이'에서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달리기 경주에서 거북이에게 지고 마는 어리석은 주인공으로 나온다.

반면 '별주부전'에서는 자라의 꾐에 빠져 바닷속까지 들어와 간(肝)을 빼앗기게 된 토끼가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로운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 존 업다이크가 하필이면 '토끼'를 원용한 것도 지혜와 어리석음이란 이율배반적인 이미지를 지닌 토끼의 상징성을 십분 활용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온종일 봄을 찾아 짚신이 다 닳도록 산과 들을 헤매었으나, 봄은 찾지 못한 채 지쳐 돌아와 보니 뜰앞 매화나무 가지 끝에 봄이 걸려 있었네'라고 노래한 옛 시인의 지적처럼 행복이란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 것일까. '일탈 속의 불안'인가, '일상 속의 평온'인가. 지혜로운 토끼라면 어느 길을 택할까. 신묘년 새해를 맞아 토끼에게 물어보는 삶의 화두이다.

조향래 북부본부장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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