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그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들

경제 관련 보도를 보면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이익인지? 경제성장은 계속되는데 왜 일자리는 점점 불안해지고 물가는 치솟는지? 복지에 지나친 예산을 쓴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과연 복지국가인지? 세계적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은 무엇이며, 그 위기는 이제 지나간 것인지 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쉽고 간명한 해설과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전작 못지않은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신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책은 2008년 세계적 금융 위기가 미칠 여파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업과 가계 부문은 원상 복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고, 이번 위기로 말미암아 생긴 엄청난 재정 적자를 만회하느라 정부는 공공 투자와 복지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어서 길게는 몇십 년 동안 경제 성장, 빈곤 문제, 사회 안정성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대공황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 경제 위기라 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던 2008년 금융위기가 몰고 온 재앙의 원인이 1980년대부터 세계를 지배해온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 있다고 본다.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그냥 내버려두면 시장이 알아서 가장 효율적이고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낸다고 믿고,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효율만 떨어뜨린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는 자유 시장 정책은 금융 위기 전부터 대부분의 나라에 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고 있었다고 한다. 자유 시장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저자는 시장이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범위는 결코 자유로운 원리에 의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되며, 시장 규제를 옹호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도 '정치적'이다. 시장의 정치성과 개인 생산성의 집단적 성격을 이해해야만 더 공평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을 이기심만으로 움직이는 존재로만 보는 것은 시장경제학자들의 허구적 논리 중 하나이다.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제도는 사람들이 이기심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은 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들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통신기술의 발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최근의 전자 통신 기술의 발전은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이지 않으며, 인터넷 혁명의 경제적, 사회적 영향은 최소한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집안일에 들이는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줌으로써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을 촉진했고, 가사 노동자 같은 직업을 거의 사라지게 만들었다. 옛것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되듯이 새것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는데, 잘못된 평가에 기초해서 국가나 기업의 정책을 결정할 경우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거의 신앙처럼 믿고 있는 사실들조차 결코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는다.

책 전체를 통해 저자는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남으로써 자본주의가 더 좋아질 수 있으며,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지 찾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현상의 본질을 알고 대안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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