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뮤직토크(11)] 한국 재즈 1세대의 초상 브라보! 재즈 라이프

지난해 연말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재즈비평가 김현준은 다소 쑥스러운 목소리로 '겨우 만들었네요'라는 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평론가이자 만화가인 남무성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겨우 만들었겠구나'라는 말을 했다.

한국 재즈 1세대를 기록하는 두 작품이 지난해 말 나란히 공개됐다. 김현준과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인재진 예술감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이판근 프로젝트' 앨범 '어 랩소디 인 콜드 에이지'와 남무성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다. 우선 앨범은 한국에 재즈가 도입되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재즈를 연구하고 지도한 이판근에 대한 헌정앨범이다. 직계 제자도 아닌 30대 중반의 음악인들은 이판근이 만들고 해석하고 편곡한 음악을 나름대로 연주한다. 이판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경의를 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판근과 함께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 재즈 1세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 홍대 앞 클럽에서의 연주부터 막걸리집에서의 즉흥연주까지, 지나간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의 연주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영화는 감동까지 준다.

하지만 두 작품을 만들게 된 동기는 안타깝다. 지난해 여름, 이판근의 연구실은 도로공사 때문에 철거당할 처지에 놓인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재즈와 민요의 관계를 고민하던 연구실은 한국 재즈에 관한 모든 자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이판근은 자료를 옮기고 연구를 계속 진행할 작은 공간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는다. 외국이면 박물관을 만들어 보존할 법한 공간을 없애버린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1세대 트럼펫 연주자 강대관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치아가 빠져 더 이상 트럼펫을 불기 힘들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8군 시절부터 재즈를 인생으로 여겼던 일흔이 넘은 거장들이 그저 저물게 돼버린 것이다.

두 사람의 평론가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재즈를 버렸을 때도 재즈만을 고집했던 1세대 음악인들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주머니를 털고 주변 신세를 지면서 만든 두 작품은 '겨우 만들었네요'라는 겸사를 질투할 만큼 웰메이드다. 특히 영화에서 마지막 연주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강대관의 모습과 무대는 감동이다.

'내가 언제 사람이 되나? 내가 음악을 잘 할 때 사람이 되는구나.' 클라리넷 연주자 이동기의 자문자답은 재즈가 유의미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론이었을 것이다. 그 방법론이 지금의 한국 재즈를 있게 했다는 점에서 경의를 표한다. 재즈가 있어 당신들이 행복했겠지만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행복합니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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