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정은(가명·45) 씨는 일종의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늘 초조하고 불안합니다. 자꾸 누군가에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현대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하잖아요. 행복도 결국 돈이 있어야 해결되는 겁니다."
김 씨의 행복 공식은 단순하다. '행복←금전적 여유←사회적 성공←공부에서 우위.' 그저 돈만 많아도 안 되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를 갖춰야 한다. 김 씨의 두 자녀는 학원과 과외 공부로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는 과외 숙제가 밀려서 공부하다가 책상에서 엎드려 잠들 지경이다. 김 씨는 "나중에 행복해지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경쟁지수와의 싸움에서 대패한 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다. 언론 매체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이 여유롭고 만족스런 여가와 교육여건을 즐기는 모습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질병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은근히 '경제적 풍요가 곧 행복'임을 주입시키고 있다. 여기에다 '비교'라는 악성 종양까지 창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총생산(GDP)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풍요를 전지구인들이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지구는 선진국들이 놓치지 않으려는 물질적 풍요와 중국·인도 등이 붙잡으려는 선진국적 풍요를 모두 제공할 만한 여유가 있을까?
영국의 비정부단체인 '뉴이코노믹스파운데이션'(nef)이 2009년 발표한 행복지구지수(HPI)는 삶의 만족도, 기대수명, 친환경지수 등을 종합해 수치화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친환경지수'다. nef는 '지구가 제공할 수 있는(또는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본다. 인류는 하나뿐인 지구가 아니라 마치 지구가 3개쯤 되는 듯 마구 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엄청난 자원을 독식하는 선진국들은 '친환경지수'에서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영국의 임상소아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올리버 제임스는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말로 현대인의 물질만능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풍요를 뜻하는 어플루언스(Affluence)와 독감을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가 결합된 조어.
풍요가 오히려 질병이 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어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돼 개인은 철저히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숨긴 채 극심한 경쟁관계 속에서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정서적 좌절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미국 펜실베니아대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경제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한계선을 분명히 긋고 있다. "가난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극빈 국가에서는 부가 더 큰 행복을 예측하는 잣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탄탄한 선진국에서는 부의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정도로 하찮다." 한국은 어디에 속할까?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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