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겹고 지치더라도 희망은 있다.'
2011년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이맘때면 새해 희망으로 떠들썩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가라앉다 못해 처량하기조차 하다. 지난해 연말 시작된 구제역 파동이 새해벽두부터 국가적 재앙이 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경기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다. 그러나 벼랑 끝에 내몰려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벼랑 끝에 내몰린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전문MC 늦깎이 도전 이은택씨
새해가 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우울한 일이다. 더구나 인생의 황혼기에 맞는 새해는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늦깎이로 전문MC에 도전하고 있는 이은택(61·사진) 씨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 씨는 지난해 대경대 방송MC과 수시1차 '만학도 특별전형'에서 최고령 합격자로 이름을 올려 대학생 예비MC가 됐다. " 초등학교 때부터 MC가 꿈이었어요. 늘 먹고살기 힘들어서 잊고 지냈는데…. 50년 동안 늘 마음속에 MC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늦은 나이지만 도전해 보기로 한 겁니다."
뒤늦게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해서 대학에 입학하려면 중·고교 졸업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57살이 되던 2006년에 이 씨는 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을 먹고 한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과정을 졸업한 뒤 경신과학고에 입학한 게 58세 때다.
그는 학업은 물론 각종 모임에 나가서 무료 MC를 봐주는 등 대학 입학 후부터 활발히 MC 활동에 나서고 있다. 올해 환갑을 맞는 그에게 인생 3막,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웃음봉사를 하는 '실버 전문MC 공연 봉사단' 창설이다. 올 3월부터는 손자·손녀 나이와 비슷한 학생들과 학과동기가 되는 이 씨는 방송MC 대학전공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당분간 해오던 일을 쉴 생각이다. "웃으면서 즐겁게 사는 데는 나이가 따로 없죠. 제 인생은 이제부터 20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탑건서 여행업 전환 권용태씨
"'수업 끝'…'누가 수업 끝이래?'
대구시 중구 봉산동에서 타워성 투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권용태(56·사진) 씨는 TV프로그램 중 젊은이들이 즐겨 보는 개그 콘서트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복숭아 학당 코너에 나오는 개그맨 왕비호(윤형빈)가 수업 끝을 알리는 교사의 말을 과감히 가로막으며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사고와 사기 등으로 점철된 인생역정. 그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삶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10여 년간 공군 장교로 근무하던 권 씨는 1984년 어느 날 비행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 그는 1년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그러나 '탑건'에 뽑힐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걷던 그에게 불의의 사고는 절망 그 자체였다.
"한순간의 사고였지만 인생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졌지요. 사고 후 내 모습도 싫었고 술과 흡연이 늘고 도박에 빠지는 등 점점 타락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그때 죽지 왜 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요."
화불단행. 사고의 후유증을 딛고 재기를 꿈꾸던 권씨는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믿었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마지막 희망의 끈까지 놓을 뻔했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권 씨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 준 사람은 아내였다. 남편이 사고를 당할 때나 사기를 당할 때나 아내는 권 씨를 위해 기꺼이 손과 발이 됐고 결국 그를 일으켜 세웠다. 4년 전에는 아내가 학원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모은 돈으로 좋아하는 여행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아내가 없었다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의 사랑이야말로 어떤 절망도 헤쳐나갈 수 있는 큰 희망입니다."
◆구제역 날벼락 돼지농장 박용활씨
"날벼락이 따로 없었어요. 출하를 앞둔 돼지들도 많아 피해액을 계산하기도 힘듭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영천시 냉천리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던 박용활(60·사진) 씨는 애지중지하던 돼지들을 살처분하라는 통보를 받고는 하늘이 노래지고 온몸에 힘이 쑥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달 24일 돼지 1천500마리를 살처분해야 했다.
"지난 4월 구제역 발생 때 잘 넘어갔고 이번에도 안동에서 구제역 발생 소식에 소독조를 설치하고 매일 축사를 청소·소독하는 등 방역 작업에 최선을 다했는데… 너무 허탈했어요." 더구나 병에 걸리지도 않은 돼지를 죽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이를 두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박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며칠째 밤잠을 설치며 울분을 삭였던 박 씨는 최근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텅 비어버린 축사지만 매일 청소를 하고 사료를 준비하며 새로운 식구를 맞을 채비를 시작했다. 이참에 농장 이름도 활암농장에서 호금호농장으로 바꿀 예정이다. 또 돼지를 키우지 않는 기간을 이용해 축사를 개조할 계획이다.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농장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평생을 돼지 사육에 바쳐 왔는데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해서라도 앞으로 돼지를 더 잘 키워서 반드시 재기하겠습니다." 박 씨의 희망 돼지는 벌써부터 무럭무럭 커 가고 있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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