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합기도 산증인 82세 채흥준 9단

이종격투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무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대무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정답은 대구다. 해방 후 일본에서 들어오는 재일한국인이 귀국하면서 여러 사정으로 도중에 머물거나 자리를 잡은 것이 대구인데다 6·25 때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은 도시가 부산과 함께 대구였기 때문에 많은 무술인들이 피란을 가다가 도중에 눌러앉았다. 그 중에서도 합기도 고수들이 많아 대구는 합기도의 고향으로 불린다. 합기도의 메카인 대구에서 합기도를 지키고 있는'합기도 지킴이'채흥준(82) 대한 흥무 합기도연구원 원장을 12일 만났다.

◆무림 고수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165cm 정도의 단신이지만 다부진 체구, 쏘는 듯한 안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 눈빛에 지레 질려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국내 합기도 창시자인 고(故) 최용술 선생의 수제자이자 합기도 9단의 최절정 고수다운 내공이 뿜어져 나왔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채 원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합기도장에서 직접 합기도 기술을 펼쳤다. 정권 뼈마디마다 툭툭 불거진 제자들과 손을 섞었다. 흐르는 물처럼 각종 술기(기술)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손만 갖다 대면 제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혹시 나이 많은 사부를 위해 일부러 낙법을 쳐주며 넘어가 주는 게 아닐까'기자도 직접 채 원장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너무 쉽게 기자의 팔을 비틀어 꺾어버린다.'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힘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버티면 버틸수록 힘이 든다. 손목과 팔, 어깨까지 모든 상체 관절이 차곡차곡 꺾여 들어 간다. 오징어처럼 구겨버린 모습이 우스광스러울 정도다. 체중 60kg에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좀체 믿어지지 않는다. 채 원장의 술기는 모두 3천 600여 가지. 검과 창 등 무기술을 뺀 맨손기술만 2천 가지에 달한다. 워낙 술기가 많다 보니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기술을 수련한단다.

"부드러움은 항상 강한 것을 이긴 답니다. 특히 합기도는 말 그대로 기(氣)를 조화시킨다는'和(화)·員(원)·流(류)'로 상대를 깨뜨리기보다는 조화를 먼저 꾀하다 모나지 않은 둥근 무술 형(形) 과 상대의 힘을 흘리는 기술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강한 것이지요."언뜻 이해가 되지만 몸소 체험을 하니 신기하기만 하다.

◆고난을 지켜준 기둥

채 원장에게 합기도는 단순한 취미나 스포츠가 아니다. 평생 그를 지켜 준 동반자이자 우군이었다. 몇 번의 사업실패와 사고 등 인생 고비고비 때마다 큰 힘이 됐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강도를 만나거나 사고를 당할 수 있지요. 그 때마다 합기도를 배운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20여 년 전 채 원장이 한창 섬유사업을 벌일 당시였다. 밤손님이 찾아왔다.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공장순찰에 나섰단다. 그런데 밤손님과 딱 마주친 게 아닌가. 결과는 뻔했다. 밤손님은 일격에 KO를 당했고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린 후에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 신고하려다 너무 심한 타격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오히려 돈을 몇 푼 줘서 돌려 보냈지요."

2.5t 트럭과 맞짱(?)을 뜬 사건도 제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다. 아침운동을 나갔던 채 원장이 신호를 무시하고 내달리던 트럭과 정면 추돌을 했다. 채 원장은 그자리에서 10여m를 날아 떨어졌고 트럭은 앞범퍼가 찢기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만신창이가 됐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급하게 119를 부르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웬걸 넘어졌던 채 원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고 얼굴이 살짝 긁히는 경미한 상처만 입었다.

합기도를 통해 단련된 낙법기술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었다.

특히 5년 전 간염으로 아들을 잃었을 때는 합기도가 종교같은 큰 힘을 발휘했다.

"합기도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지요. 온몸의 기를 모으고 다스리는 합기도 동작을 통해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단련하는 효과를 본 셈이지요"요즘도 채 원장은 마음 수련을 위해 도원에 일주일에 두 번씩은 꼭 들리며 마음을 닦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화합하는'합(合)기도'위해 연구원 설립

"현재 합기도는 이름과 달리 난맥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에 많은 합기도 단체들이 있지만 전통을 도외시한 채 합기도라는 이름을 남발하고 있습니다. 무자격자들이 도장을 차리거나 연구원을 만드는 등 활개를 치고 있지요."채 원장은 이 같은 현상은 전통합기도를 배운 고수들이 후진양성에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안타까움 탓에 지난해 8월 대구 중구에 대한흥무 합기도 연구원 총본부를 대구에 설립했다. 한 때 섬유업체 운영 등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 그가 사재를 털어 합기도의 물주를 자원하고 나선 셈이다.

"합기도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아직 기술이 정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합기도 계열의 신생무도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만들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 합기도를 계승하는 단체의 설립이 절실했습니다."

합기도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지만 채 원장이 처음부터 합기도를 배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접한 무술은 도수방어.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반란 진압을 위해 군에서 도수방어를 배우게 됐다. 5년동안의 군생활을 마친 그는 1967년부터 고향인 대구에서 본격적인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후 1년에 1단씩 승단하며 입문 5년 만에 합기도 5단의 고수가 됐다. 지난 2008년에는 9단으로 승격해 더 오를 곳이 없는'신의 경지'에 올랐다.

그렇지만 한국 합기도 대사부(大師父)로 통하는 고(故) 최용술 선생의 수제자로 더 알려져 있다. 말로만 듣던 합기도의 전설적인 존재인 최 선생의 기예가 궁금했다."손짓 하나로도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합기도는 나이 40이 넘어야만 그 진미(眞味)를 알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나이 80이 넘어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지요."

◆태권도와 상생의 길 찾아야

"합기도 단체의 분열만 없었다면 합기도는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1970년대에 이미 이러한 통합 움직임이 있었지만 기회를 놓쳐 안타깝습니다. 특히 최근 종합격투기 열풍에 밀려 태권도나 합기도 등 전통무술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술인 합기도와 태권도의 협조와 상호발전을 도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합기도와 태권도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국이 태권도에서 쌓아온 세계적 지도력과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예와 체육분야에서 세계를 계속해서 선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합기도와 태권도의 상호협조는 바로 한국 무술계의 대표적인 두 브랜드가 상생하면서 시너지효과를 거두는 첩경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종합격투기도 고유의 장점이 있지만 점차 상업적으로 변하고 보여주기 위한 무술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과연 부드러운 합기도와 강한 동작이 특징인 태권도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태권도 도장에서 합기도를 함께 가르치거나 합기도 도장에서 태권도를 함께 가르치는 방법을 통해 두 무술간 상생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여·야간 또는 계층간 갈등,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갈등의 시대. 화합으로 대표되는 합기도 정신을 강조하는 채 원장의 모습이 유난히 따뜻해 보였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