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실크로드 여행은 쾌적하게 달리는 대형버스를 타고 시작한다. 중국 서쪽 국경까지 거의 도로포장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약 2천200년 전 진시황은 말 4마리가 끄는 청동마차를 타고 지방순시를 했다고 한다. 특히 마차의 궤도를 통일했기 때문에 모든 도로에서 더 빠르게 질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이 험난한 먼 길을 두 번이나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 진나라 때 전성기를 누리며 부분적으로 국토 기초시설을 완성한 진시황의 득을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지방군현제의 실시와 동시에 만리장성을 쌓고 도로도 정비했다. 당시에는 국경의 개념도 없었을 것이며 한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는 부실한 도로만이 띄엄띄엄 존재했을 것이다. 길이 있으면 사람들이 왕래하게 되고 물자와 문화도 오가는 것이다. 여러 왕조의 수도였으며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던 시안(西安) 일대는 자연스럽게 고대문화의 집산지가 됐고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번창하고 있다.
시안을 찾는 관광객의 거의 대부분은 진시황 병마용갱을 방문한다. 시안 사람들은 만리장성이 세계 7대 불가사의라면 병마용갱은 제8대 불가사의라고 말한다.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고 있는 3개의 갱 중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제1호 갱을 들어서면 사람들은 우선 그 규모에 압도된다. 그리고 정면을 바라보며 도열해 있는 6천여 기의 병사들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사진을 찍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무도 촬영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강력하게 사진촬영을 금지했던 곳인데 주위를 둘러보니 '카메라 삼각대와 플래시 사용을 금지한다'(please refrain from using tripod or flash)는 영문 안내판이 걸려있다. 하루에 약 2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입장한다는데 모두가 휴대폰 카메라 등으로 찍겠다고 달려드니 소수의 공안원이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책적으로 진시황에 대한 대중들의 의식을 호의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인근 시설물인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그 같은 시도를 더욱 짐작하게 한다. 사람 크기의 몇 배나 되는 대형 진시황 병마용과 꼭두각시 소녀가 손을 잡고 있는 조형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 얼마 전에 만든 이 거대한 병사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폭군 진시황을 친근한 황제로 인식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박물관에는 진시황 사후 2천200년 후에 발견된 청동마차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이 마차는 발굴 당시 완전히 깨어진 상태였는데 천여 개에 달하는 조각들을 1980년부터 8년간에 걸쳐 복원하였다고 한다. 크기는 실물의 절반 정도인데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을 보면 당시 주조기술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일으켰고 과도한 토목공사를 시행해 민생 피폐의 폭정을 거듭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천하를 통일하여 강력한 대제국을 만들어 중국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진시황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 최강국으로 가기 위한 내부 결속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공로는 다민족국가들에 의한 분열의 역사를 단절하여 체제를 안정시켰다는 것이다. 또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체제 형성'이라는 의식을 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56개의 민족이 존재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진시황 병마용갱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관광객들도 많지만 인파의 대부분은 중국인들이다. 그들 중에는 한족 외에도 많은 소수민족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2천 년 넘게 움직이지 않고 도열해 있는 수천 개의 병마용들은 그들에게 '너희는 모두가 하나의 중화민족이므로 다른 군소리 말고 힘을 합쳐라'는 무언의 교시를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대륙 동쪽에서 서쪽 끝으로 연결된 실크로드. 그 멀고 먼 길 주변에는 오랜 세월을 뿌리내리며 살고 있는 다양한 민족들이 분포되어 있다. 지역마다 외모도 다르고 언어도 차이가 있다. 먼 길을 여행하면서 중국 중심의 질서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시도가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쪽 끝에서 일어나는 소수민족의 반항에 대해 이를 잠재우려는 번영의 바람도 불고 있다. 그 변화는 진시황의 청동마차를 타고 21세기 실크로드를 통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진·글: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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