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희준의 캐나다 편지] 팔뚝에다 기침하기

한국에서의 긴 휴가를 끝내고 다시 몽튼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여서 거리의 상점이며 이웃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시간이 정지되었다 다시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TV를 봐도 자극적이거나 쇼킹한 뉴스가 없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곳, 크게 즐거워할 일도 크게 기뻐할 일도 없는 곳입니다. 한국과 달리 캐나다는 느리게 흘러가는 사회이며 무엇이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다리기를 잘 못하는 한국사람들이 답답해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흘러가는 캐나다 사회에 우리 가족도 많이 익숙해졌는지 한국에 6주간 있으면서 "아! 정말 정신없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불과 2년 사이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거리의 교통 체계와 버스 노선이 변했고 자주 가던 식당과 상점의 위치, 지인들의 연락처도 바뀌었습니다. 스마트폰 열풍 때문인가 봅니다. 연일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언론 매체와 쏟아지는 정보에 정신이 멍해질 지경이었지요.

가장 큰 어려움은 시내에서 운전하기였습니다. 20년간 운전한 저도 대구에서 운전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불법 주차 차량들의 진로 방해와 신호 무시는 애교로 봐줘야 하는 일이고 끼어들기는 거의 서커스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횡단보도와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과속도 무척 위험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저도 예전 실력(?)을 되찾은 듯했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나서 스프링처럼 튀어 나가지 않으면, 규정 속도대로 운전하면 일단 클랙슨부터 울리고 보는 뒤차 때문에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불편함이 아니라 걱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러다 인명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하지만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많은 편리함을 누렸습니다. 예약하지 않고 관공서나 금융 서비스 업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IT 강국답게 곳곳에 무인민원발급기가 있고 서류 발행이나 담당자의 능숙하고 빠른 일처리는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른 듯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첫째 아이의 발바닥에 난 티눈들을 피부과 병원에서 제거했고, 둘째 아이의 이 치료도 깔끔하게 끝냈습니다. 그래서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후련합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참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움직임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역동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다 구제역과 독감, 신종플루 때문에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이 지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병원에서, 관광지에서, 마트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기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캐나다와의 차이점을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손으로 입을 가려 기침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침 묻은 손으로 악수하고 펜을 잡고 문 손잡이를 잡고 심지어 아이의 입을 닦아 주는 엄마들의 모습이 낯설게 보였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살 때는 당연하게 했던 행동이었지만 말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자기 팔뚝 있는 옷 부위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합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하면 감기 바이러스나 전염성 질병이 다른 사람에게 옮아갈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제 딸아이도 학교에서 기침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이곳 교육의 핵심은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새해 첫 달이 벌써 반이나 지나갔습니다. 새해 초가 되면 모두들 한 해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 가족은 올해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기러기 가족이 아닌, 가족 모두가 낯선 땅이지만 함께 있을 수 있어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때로는 서럽고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는 일들이 많지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아이에게는 캐나다 교육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배려와 존중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더불어 새해에는 한국 사회에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khj0916@naver.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