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찾은 청도 운문사는 하얀 눈이 군데군데 소복이 쌓여 한겨울 산사(山寺)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호거산을 뒤로 한 수려한 자연 풍광은 이곳이 왜 청도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지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정작 이곳이 관심을 끄는 것은 따로 있다. 국내 최대의 비구니 수행'교육 도량인 운문승가대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여기는 비구니가 수행하는 장소입니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을 보면서 적잖은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운문승가대학 스님들의 생활을 알아봤다.
◆예비 스님 선망의 도량
운문승가대학은 국내 5대 비구니 대학 가운데 '비구니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학풍이 엄하다. 하지만 운문승가대 졸업은 불교계 어디를 가든 인정받는 '명함'이 된다. 행정이나 수행 등 모든 면에서 역량이 있다는 인증을 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미니(불가에 입문해서 수행 중인 예비 스님)에게는 선망의 교육 도량이다. 일반 대학교처럼 4년제인 이곳은 206명의 비구니 스님과 학인 스님이 같이 먹고 잔다. 단체 생활이 기본인 것. 공부뿐 아니라 빨래나 청소, 요리 등 노동도 하면서 선후배 사이에 가족과 같은 끈끈한 관계를 맺는다. 반면 위계질서는 무척 엄격한 편이다.
학인 스님들의 생활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빨래와 청소, 먹을거리, 출타 등 여러 가지 생활에 있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 놓았다. 4학년 가운데 '학생대표'격인 입승 스님이 이같은 규칙을 정한다. 운문사 주지 일진 스님은 "규칙은 입승 스님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 주축이 돼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학승 스님 가운데는 미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국적의 외국 스님 3명이 있다. 특히 미국 국적의 선준 스님은 미국 명문 예일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국내에서 학원 강사를 하다 불교 선원을 두루 경험하면서 한국 불교의 매력에 빠져 불교 입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스님과의 인터뷰는 허락되지 않았다.
이곳 스님들은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학인 스님들이 사찰 주변 밭에서 배추나 상추, 고추 등 웬만한 채소를 재배한다. 일진 스님은 "별도의 신도가 없어도 자급자족하기 때문에 대학 운영비에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 또 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운문사 사리암에서 나오는 시줏돈을 대학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오전 3시 기상, 오후 9시 취침
운문승가대학의 하루는 오전 3시부터 시작한다. 청명한 목탁 소리와 함께 모두 기상을 한다. 오전 3시30분이 되면 모든 스님들이 법당에 모여 새벽 예불을 하고 학년별로 큰 방에 모여 이른바 '자율학습' 격인 입선 시간을 갖는다. 큰 방은 40~100명이 한꺼번에 공부도 하고 공양도 하며 잠도 자는 곳이다. 오전 5시50분에 아침 공양(식사)을 하고 개인적으로 청소나 정리를 한 다음 오전 7시쯤에 상강례(上講禮'부처에게 공부할 것을 올리는 불교계의 의식)를 한다. 그런 뒤 오전 9시30분까지 입선시간을 갖는다. 강사 스님인 영덕 스님은 "공부하고 식사하며 노동하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오후 9시가 되면 모두 취침한다"고 했다.
학인 스님은 매달 두 차례(음력 기준으로 초하루와 보름)만 외출이 자유롭다. 다른 날에도 외출할 수 있으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음력을 기준으로 방학도 있는데 그 기간에는 각 학년별로 1개 반만 남겨두고 각 학인 스님들은 은사 스님이 있는 사찰로 되돌아갔다 개학하면 복귀한다. 학인 스님들은 평소 때 외부인과 만나거나 접촉할 수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고 한다. 영덕 스님은 "외부인과의 만남은 일부러 차단하지는 않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새로운 가치관을 수립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스스로 접촉을 자제한다"고 했다.
학인 스님들은 외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9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 경주 동국대병원과 서울 일산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가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혜벽 스님은 "약 10명 정도 가는데 스님들이 오히려 환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온다"고 했다. 또 운문사 주변 자판기 수익금을 모아 전국의 불우이웃 단체에 기증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학인 스님들의 하루 일과(상황에 따라 다소 변화가 있음)
오전 3시 기상
3시30분~ 새벽예불, 108배 예참(禮懺)
4시20분~ 새벽 입선
5시50분~ 아침 공양
6시20분~ 개인 시간
7시10분~ 상강례(上講禮)
7시30분~ 간경(看經·일종의 수업 개념으로 경전을 공부하는 것)
9시30분~ 개인 시간 및 울력(육체노동)
10시40분~ 사시마지(巳時摩旨·부처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
11시30분~ 점심 공양
정오~ 외전(外典·외국어, 꽃꽂이 등 일종의 취미 공부)
오후 2시~ 오후 입선
4시20분~ 개인 시간
5시~ 저녁 공양
5시50분~ 저녁 예불
6시20분~ 논강(論講·토론 및 다음날 발표 준비)
9시 취침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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