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니까 춥기는 추워야지예. 하지만 손님이 너무 없어 걱정이네예. 하루종일 앉아 있었는데 2만원 치도 못 팔았어예."
16일 오전 대구 북구 산격동 산격시장 앞. '콩나물 아지매'로 불리는 김기연(53·여) 씨는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온 이날도 길가에 자리를 깔았다. 김 씨는 서둘러 칼국수 면과 청국장, 콩나물 등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강추위에 콩나물도 두툼한 이불 옷을 입었다. 영하 13℃를 기록한 이날 과일과 채소를 팔던 상인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김 씨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김 씨에게 쉬는 날은 없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6년째 이어온 일이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잔뜩 무장했다. 목도리 세 개로 얼굴을 칭칭 감고, 발에는 양말 두 켤레에다 버선까지 껴 신었다. 그래도 칼바람이 빈틈을 파고 들어온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햇빛이 들지 않아 손발이 얼어붙었다. 군밤 장수는 비닐로 된 바람막이라도 있지만 그는 칼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만 했다. 추위보다 더 고달픈 것은 줄어든 매출이다.
"손님 올까봐 자리는 지켜야지예. 혹시 손님 왔다가 이제 장사 안 하는 줄 알고 딴 데 가면 안되잖아예."
그래도 그는 자릿세도 받지 않고 약국 앞 공간을 내어준 약국 사장에게 고마워하며 그 고마움을 손님들과 나누고 있었다. 인근 대학 중국 유학생들이 콩나물을 사러 오면 한 주먹씩 더, '한국의 정'을 듬뿍 담아 준다.
"남의 나라에 와서 공부한다고 고생하잖아예. 서로 돕고 살아야지예." 김 씨의 따뜻한 마음이 대구의 기온을 1도 높이고 있었다.
같은 날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아파트 경비원 경력 10년 차인 박희석(72) 씨는 칼바람을 가르며 아파트 주변을 순찰하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순찰하고 일지를 적으려면 손이 얼어서 글씨가 써지지 않아요."
추운 날씨에 경비실 인터폰은 불이 난다. '수도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도시가스가 가동되지 않는다'는 등 항의 전화가 대부분이다. 지은 지 23년 된 이 아파트는 계량기가 외부에 노출돼 있어 동파 사고가 잦다. 하지만 아파트 430가구를 박 씨를 포함한 경비원 2명이 교대로 관리하다 보니 일손이 모자랄 때가 많다. "요즘에는 동파 사고로 저희를 찾는 아파트 주민 분들이 부쩍 늘었어요. 몸은 하나인데 여러 가구에서 인터폰이 울릴 때면 난감하기 그지없죠."
박 씨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주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그리워진다"고 했다. 그는 올 겨울엔 쌓인 눈을 치우지 않는다고 주민에게 항의를 많이 받았다. "혼자서 아파트 단지 눈을 다 치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데 주민들이 조금만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겨울을 마지막으로 경비실을 떠나는 박 씨의 마지막 바람이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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