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삶] 청구시장 '계정'떡집 용수 스님

전통떡을 빚고 있는 용수 스님이 쪄낸 송기 송편과 시루떡을 선보이고 있다.
전통떡을 빚고 있는 용수 스님이 쪄낸 송기 송편과 시루떡을 선보이고 있다.

대구 만촌동 청구시장에는 스님이 6년째 운영하는 전통떡집이 있다. 장옥은 낡아 허름하지만 건물 2층으로 들어서면 떡을 찌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70㎡ 규모의 떡공장에는 쌀을 빻는 기계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시렁에는 방금 쪄낸 떡이 정갈하게 잘려있다.

"스님이 산에 있지 않고 전통떡집을 하고 있다고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중생들에게 잊혀가는 전통떡을 전수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도 불도 정진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니까요."

'계정' 떡집의 주인인 용수(52) 스님. 그는 사무실 옆 떡 작업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주문받은 전통떡을 만드느라 손놀림이 분주했다. 용수 스님이 주로 만드는 떡은 옛날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송기 시루떡과 송기 송편이다. 떡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송진 향이 입 가득 퍼졌다. 장년층이라면 어렸을 적에 솔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겨내고 소나무 진액을 빨아대던 추억을 되새기게 할 법했다.

"송기떡은 요즘 제일 많이 나가요. 불자들이 자주 주문을 하거든요. 서울 유통회사에도 대량으로 납품도 하고요. 송기떡은 수출도 추진하고 있고 특허도 출원 중이에요"

용수 스님은 자신의 손으로 빚어낸 전통떡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가 전통떡에 관심을 갖고 문헌을 뒤져 재현한 떡 종류만도 무려 100여 가지. 밀가루 재료로 만든 소아화방, 찰기장 재료로 만든 진강병방, 밤과 찹쌀로 만든 고려육고병, 조와 찹쌀·견과류로 만든 차고방, 토란과 찹쌀로 만든 토란병, 연잎으로 만든 연시루떡…. 모두 옛 민초들이 생활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 즐겨 먹던 떡이다.

구름떡, 약밥, 쌈지떡, 꽃송편, 오메기떡, 여주산병, 대추약편 등 고급떡도 있다. 그는 자신이 재현한 전통떡 종류마다 g단위로 재료 표준화도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식으로 전통떡에 대해 배워보지는 못했다. 전통떡을 만드는 정규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옛날 문헌을 뒤져가며 일일이 떡을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또 길을 가다 떡집이 있으면 떡을 사서 먹어보며 맛의 차이를 비교했다. 고유의 떡맛을 찾기 위해 실험에 실험을 거치는 과정에서 버린 떡만도 엄청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렵사리 터득한 전통떡 제조노하우를 전수하는 데도 열성이다. 지역 실정에 적합한 맞춤 떡집 개설을 위해 각지를 돌며 방문교육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3년간 기술직업전문학교도 운영했다. 전통떡을 가르쳐보기 위해서였다. 대구지역 떡집 주인 400명을 모아 전수교육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제과제빵 과정은 있었지만 전통떡 과정은 없었어요. 그래서 노동부를 엄청 설득했어요. 결국 국비를 따내 전통떡 과정을 개설하고 전통떡 과정의 시설기준까지 만들어줬죠. 아직도 전통떡과 관련한 국가 자격증이 없는 게 아쉬워요."

그는 전문대학에도 전통떡 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때 학생을 모집해 교육을 했지만 학교 측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 학과 개설 1년 만에 폐과했다고 했다. 그는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전통떡 학과를 개설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시장기능이 떨어진 청구시장 50여 곳 전 점포주에게 떡 기술을 가르쳐 전통떡 타운 조성을 추진하다 협의가 잘 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며 귀띔했다.

그래도 그는 전통떡 전수를 위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현재 대구농업기술센터와 연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연잎과 연근을 이용한 전통떡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고, 주부를 상대로 전통떡 교육과정 개설도 추진 중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전통떡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전통떡에 관한 모든 자료를 전시하고 떡 만들기 체험장을 갖춘 그런 박물관 말이다.

그는 앞으로 요양원이나 양로원에도 전통떡 기술을 전수할 계획이다. 시설 어르신들에게 소일거리도 주고 벌이도 안겨주기 위해서다.

"각 사찰마다 상좌 없는 스님들은 노후에 갈 곳이 없어요. 이런 노스님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양로원을 지어주고 싶어요. 스님들이 떡을 빚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학에서 설계건축을 전공한 그는 2005년 출가했고 매일 오전에는 떡공장에서 전통떡을 만들고 오후에는 경남 합천에 있는 토굴에서 불도에 정진하고 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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