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민중을 원숭이로 아는 자들

조삼모사(朝三暮四), 다들 아는 말이지만 한 번 더 되씹어보자. 원숭이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주는 것과 반대로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고 했을 때 원숭이들이 선택한 쪽은 조사모삼(朝四暮三)이었다. 송(宋)나라 때 수백 마리의 원숭이를 길렀다는 저공(狙公)이란 사람의 일화다. 너무 많은 원숭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가산이 줄어들다 드디어 집안 식구들 양식이 떨어질 정도로 망하게 되자 도토리 양식은 더 늘리지 않고도 원숭이들의 인기는 잃지 않기 위해 내건 일종의 속임수다. 이러나저러나 똑같이 7개인데도 원숭이들은 아침 4개 저녁 3개 조건이 좋다며 박수를 친 것이다. 어리석은 무리를 속여 먹을 때 쓰는 비유다.

정치판의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저공이 똑같은 7개의 도토리로 원숭이를 기쁘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듯이 정치꾼들도 민중이 어리석을 때는 포퓰리즘의 속임수를 손쉽게 부릴 수 있다. 선심 공짜에 속는 어리석은 민중의 귀엔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 굶어 죽게 돼도 앞날(내년 농사)을 위해서는 종자(種子)만은 아껴서 남겨둔다는 뜻이지만 대중은 내년 농사를 망치든 말든 우선 오늘 술 담그고 떡 해먹고 잔치하자는 선동에 무너지기가 쉽다. 포퓰리즘의 마성(魔性) 때문이다.

포퓰리즘엔 오늘의 쾌락과 만족만 있고 내일의 희망, 미래의 준비가 없다. 그런 포퓰리즘은 상대가 조삼모사에 속는 원숭이처럼 어리석거나 탐욕적일 때 먹혀든다. 지금 민주당이 내걸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공짜로만 치닫는 정책 이슈가 포퓰리즘이냐 아니냐는 시비는 민중이 원숭이 수준이냐, 씨앗 베고 죽는 농부 수준이냐에 따라 갈리지만 결국엔 사람 사는 세상이다 보니 망국적인 계층 분열을 일으킨다.

그런 판국에 돈 뿌려대는 포퓰리즘뿐 아니라 악담이나 거짓말을 뿌려서 대중에 영합하고 정치적 인기를 얻어내는 '립(lip) 포퓰리즘'까지 번지고 있다. 국가 부채 460조 원인 빚더미 살림에서 30조~54조 원으로 추정된다는(복지부 기준) 무상의료를 내건 손학규 민주당 대표 경우를 보자. 같은 당(黨)에서조차 '위험'한 정책이란 경고가 나왔음에도 '한국병을 고치겠다'며 무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내년 농사를 위해 우선 배 좀 고파도 씨앗은 남겨야 한다고 하는데 종자까지 떡 해먹자는 논리다. 한국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한국병을 도지게 하자는 언동이다. 대선 경쟁자인 박근혜 의원을 두고는 '아무리 뭘 어쩌고저쩌고 해도 박정희의 딸이다'고 비하했다. 한 줌도 안 되는 좌파 지지자 빼고는 당장 이렇게 되받을 것이다. '박정희 딸이면 어때서? 당신 아버진 누구신데? 당 대표 취임 100일 기념식장에서 잡수신 케이크, 박정희의 경제개발 기적이 없었더라면 단돈 기만 원짜리나마 무슨 돈으로 사 먹었을까'…. 세 치 혀로 자기편이 싫어할 거라고 짐작되는 상대를 깎아내리고 대신 공격해줌으로써 인기와 표를 얻어내려는 것도 입으로 퍼주는 포퓰리즘이다.

그런 입 포퓰리즘은 여당 쪽도 마찬가지다. 이재오란 사람은 주군인 대통령이 '슈퍼 같은 데서도 일반 의약품을 살 수 없겠느냐'고 언급한 지 달포도 안 돼 자신의 지역구 약사총회에 나가 '슈퍼 판매 내가 못 하도록 하겠다. 약사님들은 안심해도 좋다'고 했다. 한나라당 대표와 복지부장관도 거들었다. 일반 의약품 슈퍼 판매의 장단점은 정부와 약업 전문인들의 합리적 논의에 의해 결정될 일이다. 아래위도 없이 국민 편의, 의약 오남용 진단도 없이 너도나도 입 인심으로 표밭 인기나 챙기는 건 더 질 나쁜 포퓰리즘이다.

여당 대표 아들 부정 입학 의혹 폭로로 반(反)여당 세력의 인기에 영합했던 거짓말 퍼붓기도 전형적인 '악성 포퓰리즘'이었다. 허황된 말을 '하는 것'으로 세(勢)에 영합하는 것만이 포퓰리즘이 아니다. 무상급식에는 박수 치고 체벌 금지로 바닥에 떨어진 교권 문제에는 입 다문 전교조처럼 '침묵' 으로(조직 이념 등에) 영합하는 것 또한 포퓰리즘이다.

그런저런 포퓰리즘들은 국민을 원숭이로 보는 교만함에서 나오고 민중의 어리석음이 그 교만을 자초한다. 원숭이가 될 건가, 농부가 될 건가.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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