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침묵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시처럼 날카롭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말은 쓰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로 함부로 내뱉는 말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말은 의사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소통의 쓰임을 넘어 군더더기가 붙거나 지나치면 막말이나 선동으로 변질되고 결국 욕이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 묵언(默言)은 수행의 한 방편이다. 공허한 말을 끊고 미혹한 자기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수단이다. 무문관이나 용맹정진, 면벽관심(面壁觀心)과 같은 선 수행에서 말은 아무 소용이 없다. 화두를 들고 자기를 들여다보며 마음을 닦는 일에 말은 그저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묵언을 깰 경우 엄한 벌칙으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경계하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침묵 연설'이 화제다. 12일 총기 사건이 발생한 애리조나주 투산을 방문한 오바마는 연설 도중 51초간 말을 끊었다. 말 잘하기로 소문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하다 말을 멈추고 좌우로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허공에 시선을 둬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 없이 시위했다.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한 통신사 광고 카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미국의 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번지르르한 말이 아님을 그의 침묵은 역설했다.

사람들은 때로 백 마디 말보다 짧은 침묵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공감한다. 절묘한 시점에 오바마 대통령이 잠시 침묵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었다. 정적들도 최고의 연설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지도자의 본능적인 판단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온갖 말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정치판의 막말과 횡설수설에 국민들은 짜증을 낸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온갖 말을 쏟아내고 비판을 넘어 상대의 폐부를 후벼 파는 말까지도 미덕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인 것이다. 말로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으면 구업(口業)을 지을 일도 없다고 한다. 이런 가르침에도 우리는 여전히 말을 휘두른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침묵에 아무런 공감이 없고 침묵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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