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꼭닥스럽게 때로는 설렁설렁

강원도 삼척에 죽서루(竹西樓)라는 누각이 있습니다. 절벽 위 바위에 세워진 이 누각은 특이하게도 17개 기둥의 길이가 제각각입니다. 13개는 바위 위에 그냥 세워져 있고 나머지는 초석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암반터를 고르지 않고 기둥 길이를 달리해 높이를 맞춘 조상들의 여유와 융통성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바위를 폭파시키거나 평평하게 깎으려는 생각부터 했겠지요.

우리나라 지형 여건상 평평한 땅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산하에 널린 돌과 바위도 둥그런 것, 삐딱한 것, 각진 것 등 모양새가 각양각색입니다. 우리 선인들은 그런 막돌을 주춧돌로 썼습니다. 적당한 돌을 주춧돌 삼아 그랭이질(주춧돌의 생김새에 맞춰 기둥을 깎음)을 해서 기둥을 얹었습니다. 이를 '덤벙 주초'라고 하더군요.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서둘러 뛰어드는 모양을 뜻하는 '덤벙'은 무거운 물건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에서 비롯된 우리말입니다. 큰 물건이 물에 떨어질 때 '덤벙' 하는 큰 소리를 내듯, 사소함에 얽매이지 않고 스케일 있게 사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깊은 지혜가 '덤벙 주초'라는 말에 녹아 있지요.

오랜만에 만난 저의 할머니께서 이런 말부터 하십니다. "우리 은아는 일을 너무 꼭닥시럽게 할라케싸서 지 몸이 피곤할 낀데…. 설렁설렁 살그래이." '꼭닥스럽다'는 설렁설렁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의 성격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여든일곱 살이신 할머니는 2년 전부터 기력이 쇠해져 거동이 불편하고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십니다. 매사에 걱정이 많은데다 성취욕 때문에 일을 많이 벌여, 실속보다 분주함이 더 많은 손녀가 당신의 눈에는 애처로웠나 봅니다. 그래도 손녀 사랑은 누구보다도 깊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가운데서도 저의 장단점을 훤히 꿰고 계십니다.

고백하자면 할머니 말처럼 저는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을 지녔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무척 엄격하고 똑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을 물고 늘어집니다. 웬만해서는 성이 차지 않는 꼭닥스러움은 초교 시절부터 제 마음속에 자리를 튼 것 같습니다. 이런 성격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성과 계획성으로 이어졌지만, 끊임없는 불안도 만들어냈습니다. 늘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고 조금만 게으름 피워도 도태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문학치료학이라는 심리상담 분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도 어쩌면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꼭닥스러움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속 이끌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탄하지 않기는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바늘 끝 하나 허용치 않는 각박한 삶의 방식을 재촉합니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강박관념 속에서 벼랑 끝 경쟁을 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배려나, 다름에 대한 관대함을 찾을 여유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도 잊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지만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불행을 택한 이들이 적잖습니다. 꼭닥스러운 성격 때문에 삶이 힘들고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설렁설렁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책임감이라는 요소 안에는 두 가지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꼭닥스럽게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삶을 떠도는 것입니다. 후자의 사람은 매사에 맺고 끊음이 없으면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받는 타인들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석가와 공자가 괜히 중도와 중용을 누누이 강조하지는 않았을 테지요. 꼭닥스럽게 살든, 설렁설렁 살든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기에 그때그때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농사를 잘 지으려면 날씨가 중요한데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봐서도 안 되겠지요. 제때에 밭 갈고 파종하며 풀 뽑고 거름을 줘야 합니다. 누군가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제게 주어진 일은 온 힘을 다하겠나이다. 그러나 제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온다면 온전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느님,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게 주십시오." 신묘년 새해 들어 이런 기도와 함께 개인적인 결심도 해봅니다. 덜 꼭닥스럽게 살기. 몸과 마음에 밴 꼭닥스러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할머니 말씀처럼 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도록 '마음의 빗장'을 여는 노력을 계속해야겠습니다.

김은아(영남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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