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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국 지위 고집하다…가축 200만마리 살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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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방역당국은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이 북부지역으로 퍼지자 살처분·매몰작업(사진 1)을 벌이고 시군 경계 및 주요 도로 방역(사진 2)에 전력을 쏟았으나,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급기야 대책회의(사진 3) 등을 통해 전국적인 예방백신 접종(사진 4)에 나섰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사진4. 방역당국은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첫 발생한 구제역이 북부지역으로 퍼지자 살처분·매몰작업(사진 1)을 벌이고 시군 경계 및 주요 도로 방역(사진 2)에 전력을 쏟았으나,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급기야 대책회의(사진 3) 등을 통해 전국적인 예방백신 접종(사진 4)에 나섰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우리나라를 흔들고 있는 구제역 사태는 가축 전염병이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해 말 발생한 구제역은 사상 초유의 전국적 사태로 번지면서 축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 전반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연간 20억원가량의 육류 수출 명분 때문에 구제역 청정국 지위에 집착,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그의 600배인 1조2천억원의 재정 손실(구제역 관련 예산 지출)을 입었다. 구제역 발생 50일을 맞아 발생 원인과 피해 현황, 문제점, 대책 등을 짚어본다.

◆구제역 발생과 피해 현황

지난해 11월 29일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양돈단지내 2농가의 돼지가 구제역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발생 50일을 맞고 있다. 구제역 첫 발생지 안동지역은 지금까지 모두 292곳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14만여 마리의 소와 돼지 등 가축을 매몰처리했다.

17일 현재 전국적으로 살처분 매몰 대상 가축수는 200만 마리에 육박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날 살처분 매몰 대상 가축수가 4천155개 농장 198만6천987마리로 집계했으며, 이 가운데 87%인 172만7천715마리를 살처분 매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살처분 보상금과 예방백신 접종, 방역비 등 구제역 관련 비용이 2조원대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살처분 매몰 대상을 가축별로 보면 소 13만2천382마리, 돼지 184만9천436마리, 염소 3천480마리, 사슴 1천689마리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하루 평균 4, 5건 발생했던 구제역이 16일 이후 충남 천안과 당진에서 2건의 의심신고만 접수되는 등 다소 진정 국면을 보여 예방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초기 검역 부실이 키운 '인재'

안동시와 검·방역 당국은 구제역 첫 발생일을 지난해 11월 29일로 발표했다. 이를 기준으로 방역선을 설치하고 방역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는 구제역 바이러스가 안동은 물론이고, 안동 방역선을 벗어나 전국으로 확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1월 29일 첫 구제역 양성판정 이전인 지난해 11월 23일과 26일 등 4차례에 걸쳐 이미 서현양돈단지에서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신고가 있었으며 검역 당국이 '음성'으로 오판함으로써 전국 확산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경북가축위생시험소 북부지소는 23일 첫 의심축 신고를 임상검사와 키트 항체 검사만으로 '음성' 판정 내렸다. 채취한 시료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으로 보내 항원 검사 등 정밀검사를 해야 하는 규정을 무시한 채 결론내린 '음성' 판정으로 발빠른 구제역 방역 대책을 세우지 못해 첫 양성판정까지의 6일 동안 엄청난 구제역 바이러스가 차량과 사람에 의해 외부로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전국 축산·수의학 전문가들도 이달 12일 '구제역·AI 대책과 현황'에 대한 토론회에서 "초동 방역 실패는 시·도 가축위생시험소와 중앙 정부의 일관된 체계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일어났다"면서 "23일 초기 음성 오판으로 29일까지 6일 동안 바이러스가 이미 방역선을 넘어 퍼진 것이 원인"이라 지적했다.

구제역 발생 초기, 언론들이 잇따라 10월 초에 베트남을 다녀온 안동지역 축산농 3명이 공항검역을 무시하고 농장을 출입한 것이 감염 원인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언론들의 초기 감염 원인 지목은 당국이 정확한 역학조사 등 없이 '감기 바이러스를 퍼트린 사람 찾기'식의 마녀사냥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제역 사태 한 달째인 지난해 연말 구제역 바이러스 유입 매개체로 지목된 베트남 여행 축산농가 3명 중 1명의 축사에서 한우 234마리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지역 양축농가들이 제기한 초기 역학 조사의 오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됐다.

◆정부, 백신접종으로 구제역 대책 변화

정부는 이달 13일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살처분을 통해 유지했던 청정국 축산정책을 '백신접종 청정국'으로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골자로 전국 가축에 대한 구제역 백신 접종을 발표했다. 청정국 지위를 위해 살처분 축산정책에서 백신접종 청정국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검역시스템의 보완을 지적하고 있다. 초동방역 실패는 시·도 가축위생시험소와 중앙 정부의 일관된 체계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 이 때문에 구제역과 조류 인플루엔자(AI) 등 악성 가축질병의 초동 방역에 성공하려면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에 검역검사청을 신설하고 산하에 전문연구소를 설치해 전염병 발생 시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과 대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수의과학검역원에 있는 질병위생연구부로는 축산농을 괴롭히는 구제역, AI, 브루셀라, 돼지 콜레라 등 악성 가축 질병에 대한 기초연구가 충분치 못하다며 검역검사청 산하에 병원체에 대한 유전자 연구, 신속진단법 개발, 항바이러스제 연구, 역학조사 등을 맡을 전문연구소 설치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구제역 발생 지방자치단체에 모든 방역대책을 맡겨 지자체 간 업무 협조가 제대로 안되는 등 구제역 조기 차단에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구제역의 중앙 정부 차원 방역대책 수립, 방역 인력의 군 병력 투입 등 정부 차원의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구제역 발생 일지

▷2000.3.24~4.15 = 경기 파주·충남 홍성·충북 충주 등 3개 도 6개 시·군에서 소 15건 구제역 발생, 2천216마리 살처분.

▷2002.5.2~6.23 = 경기 안성·용인·평택, 충북 진천 등 2개 도 4개 시·군에서 돼지 15건, 소 1건 구제역 발생, 16만155마리 살처분.

▷2010. 1.2~29 = 경기 포천·연천군 등 2개 시·군에서 소 6건 구제역 발생, 5천956마리 살처분.

▷4.8~5.6 = 인천 강화, 경기 김포, 충북 충주, 충남 청양 등 4개 시·도 4개 시·군에서 소 7건, 돼지 4건 구제역 발생, 4만9874마리 살처분.

▷9.27 = 청정국 지위 회복.

▷2010.11.29 = 안동시 와룡면 서현리 돼지 구제역 확진.

▷11.30 = 안동시 서후면 이송천리 한우 구제역 확진.

▷12.1~4 = 안동시 북후면, 와룡면 등 25개 농가에서 구제역 추가.

▷12.5 = 예천군 한우농가 등에서 구제역 양성 반응. 안동 외 지역에서 첫 구제역.

▷12.7 = 영양군 한우농가 1곳에서 구제역 양성 반응 추가.

▷12.10 = 영주시 한우농가에서도 구제역 확진.

▷12.15 = 경기 양주, 연천 등 돼지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농식품부 위기경보를 '주의(Yellow)'에서 '경계(Orange)'로 격상.

▷12.18~21 = 경기 파주, 고양, 가평 등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12.22 = 강원 평창·화천, 경기 연천·포천·김포 등 축산농가에서 구제역 발생. 예방백신 접종 결정.

▷12.30 = 경주, 영천서 구제역 확진.

▷12.31 = 포항서 구제역 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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