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네 식구 家長이 된 영미 씨

"가족 모두 환자인데 몸 성한 내가 나서야죠"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최성훈(가명) 씨는 딸 영미(왼쪽) 씨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부녀는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 정을 나누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중인 최성훈(가명) 씨는 딸 영미(왼쪽) 씨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부녀는 마음으로 소통하며 서로 정을 나누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아빠, 사랑해요."

영미(가명·24·여) 씨는 아버지 최성훈(가명·57) 씨의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아버지는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는 딸의 속삭임에 왼손 검지를 '까딱' 하며 응답했다. 벌써 석 달째, 아버지는 말을 잃은 채 침대에 누워 있다. 뇌출혈로 쓰러져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손가락으로 의사를 표현할 정도는 됐다. 영미 씨는 하얗게 센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미처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아버지의 빈자리

지난해 11월 2일 밤이었다. 화장실에 간 아버지가 1시간이 지났는데 나오지 않았다.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영미 씨가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큰아들 최영준(가명·28) 씨가 아버지를 들쳐 업고 안방에 눕혔다. 영미 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 달 전에도 화장실에서 쓰려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 의식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이 밝아도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았다. 몸을 흔들고 크게 이름을 불러도 답이 없었다. "그때 빨리 병원으로 옮겼다면 아빠가 괜찮았을 텐데…." 영미 씨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뒤늦게 찾아간 병원에선 '뇌출혈'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미 씨는 아버지의 사고 이후 혼자서 집 청소를 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너덜너덜한 지갑과 밑창이 닳아버린 운동화, 소매 끝이 떨어진 낡은 점퍼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멀쩡한 물건이 없었다.

영미 씨는 "아빠 인생이 가엾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생의 변두리를 맴돌았다. 아버지는 '대타'였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덤프 트럭 '예비 기사'였던 그는 정규 직원이 일을 못 할 때 전화를 받고 달려나갔다. 타인의 빈 자리를 메우는 일은 늘 불안했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에 8만원이 나왔다. 아버지는 월급이 아닌 일당을 가져오는 가장이었기에 가정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도축장에서 돼지를 잡았다.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렇게 평생 가족을 위해 살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표현하지 못한 딸

영미 씨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앉아서도 묵묵히 밥만 먹었고, TV를 볼 때도 화면만 응시했다. 영미 씨가 이렇게 된 데는 오빠의 영향이 컸다. 오빠 영준 씨는 외부와 단절된 사람이다.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렀다. 6년 전 일 때문이었다. 영준 씨는 초등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던 청소년 3명을 나무라다가 주먹질을 했고 이 때문에 구치소에 40일 넘게 갇혀 있었다. 부모님은 합의금 1천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사방에 돈을 빌리러 다녔다. 영준 씨는 부모의 빚으로 구치소에서 나왔다. 영미 씨는 "그날 이후 오빠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방문을 굳게 잠근 채 잠만 잤고 식구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머니 허경자(가명·53) 씨가 두려워할 정도였다. 아버지도 난폭해진 아들을 말리지 못했다. 폭식 탓에 몸무게도 110㎏으로 늘었다. 병원에서 지적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영미 씨는 난폭한 오빠가, 가난한 집이 싫었다. '우리 집은 왜 이럴까.' 화목한 가정은 그에게 멀게만 느껴졌다. 영미 씨는 식구들과 마음의 벽을 쌓았다.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이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아버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더 시리다. "아빠가 쓰러지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했어요."

영미 씨는 매일 병원 중환자실을 찾는다. 아버지 간병을 위해서다. 아버지 목에 난 구멍에 호스를 깊숙이 넣어 가래를 뽑는다.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아버지의 고통이 영미 씨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렇게라도 영미 씨는 아버지와 함께하고 싶었다.

◆가장이 된 딸

영미 씨는 이제 가장이 됐다. 가사 도우미와 식당 일을 했던 어머니마저 '섬유조직염'이라는 질환 때문에 약을 달고 산다. 장남인 오빠도 의지되기는커녕 오히려 영미 씨가 보살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영미 씨 가족은 한 달에 정부 지원금 65만원을 받는다. 아버지 병원비와 아파트 관리비, 세금, 생활비를 감당하기에 65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다음달 대구의 한 전문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는 영미 씨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코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차비가 없어 아버지 병원에 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식당 아르바이트라도 찾아야죠. 배를 곯고 살 수는 없잖아요."

영미 씨는 요즘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오빠, 병실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세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이 그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래도 영미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풍에 걸린 외할머니를 중학교 때부터 간호하며 키워 온 사회복지사의 꿈을 가족을 위해서라도 꼭 이뤄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누구를 원망한다고 해서 현실이 나아지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영미 씨는 진짜 가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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