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임에 가면 대부분 사람들은 '먹고사는 얘기'부터 꺼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실적은 호전되고 있고,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고 하는데, 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느냐고 불만들을 쏟아낸다. 학창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던 한 친구(은행원)는 과거 '운동권'에서 주로 쓰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덫' '자본의 탐욕' 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부의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등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한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 즐겁고 살가운 시간을 갖자고 만든 자리가 오히려 어깨를 더 무겁게 한다. 갑갑한 이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한국의 경제지표는 개선되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한국은행 추정치) 6% 안팎에 이르고, 경제연구소들은 올해도 4%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란 복병을 만나 경제성장률이 2008년 2.2%, 2009년 0.2%에 머물렀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유럽 선진국에 비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실물경기는 여전히 터널 속이다. 경제성장과 관련, 국가 경제와 국민 개별 경제 사이의 괴리감을 해소하는 데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는 일이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09년 2분기 이후 3% 아래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채소값 파동 등의 여파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고, 원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에 허리가 휘고 있으며, 정부는 물가 관리 종합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다음은 실업난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실업률은 지난 3년간 3~4%대이다. 하지만 구직 포기자 등을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8~10%대에 이른다.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데도, 실업난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4%대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올해도 기업들의 신규 채용은 부진할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올해 채용 계획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3.7% 줄었다. 실업난은 이명박 정부에서만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실업 문제는 중요한 경제 정책 과제로 부각됐다. 역대 정부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 실업난 해소에 나섰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고용 없는 성장'의 고착화 때문이다.
실업난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 기업들은 영업이익과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미국의 국내 고용은 되레 악화됐다. 지난 5월 9%대에 진입한 실업률이 지난 연말 9.8%까지 상승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의 해외 진출을 원인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미국 기업의 성장은 오히려 국민들의 '밥그릇'을 뺏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에는 '공장 및 설비의 자동화' 'IT산업에 대한 의존도 확대' '해외 아웃소싱' 등이 있는데, 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노동계약관의 변형'에서 찾을 수 있겠다. 과거 대량생산을 특징으로 한 전통산업 시절에는 무기한 계약과 집단 계약 형태인 '포드주의 노동 관계'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가 첨단화하고 다품종 소량생산이 요구되면서 포드주의 노동 관계는 시장에서 물러나게 됐다.
개인의 역량이 전체 생산성을 좌우하고, 트렌드와 생산 라인이 혁신되면서 노동의 숙련도보다는 새로움이 중시됐다. 따라서 노동의 가치는 노동자 집단의 전체 평균이 아닌, 노동자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또 개별 계약과 단기 계약이 무기한 계약과 집단 계약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기간제'시간제 고용, 계약직 고용, 분사나 하청을 통한 고용 등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 같은 고용 형태는 기업들에게는 노동의 유연성 확보,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주지만,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 불안 상태로 내몰고 있다.
현재의 양적 경제성장과 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사회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들이 함께 성장의 열매를 맛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교영(특집부장)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탄핵 집회 참석한 이원종 "그만 내려와라,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