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규리의 시와 함께] 절간의 소 이야기

백석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 소는 인간(人間)보다 영(靈)해서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藥)이 있는 줄 안다고

수양산(首陽山)의 어느 오래된 절에서 칠십이 넘은 노장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치맛자락의 산나물을 추었다

진리가 멀리 있지 않은 것처럼 약(藥)은 먼 데 있지 않다. 누구는 "뒷산에서 얻은 병의 약을 히말라야 설산에서 찾지 말라"고 말한다. 소는 열 걸음 안에 제 병을 낫게 할 약이 있는 줄 안다는 데, 그래서 병이 들면 풀밭으로 가 약풀을 뜯는다는 데, 우리는 소를 너무 쉽게 보내고 있지 않은가. 약을 찾을 겨를도 없이 쉽게 보내고 있지 않은가.

소는 평생 풀만을 먹고 살았으므로 당연히 탈이 나면 그 치유법도 제가 먹던 풀에서 찾아야 하는 것. 그 삶의 질서와 순리를 누가 깨뜨린 걸까. 수양산 어느 오래된 절의 노장께서 짐짓 치맛자락 아래 산나물을 찾아 뒤지며 전하던 소 이야기는 오늘과 같은 일을 예견했음일까.

지난번에 이어 '소' 시편을 다시 읽는 이유는 구제역으로 인한 뒤숭숭한 심사 때문인데, 생매장당하는 가축들로 인한 사회적 트라우마는 쉬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생명이란 누가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나고 도태되는 것 아닌가. 우리 시의 언어미학을 새롭게 일군 백석의 시 한 편을 함께하며 소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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