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름통] 결말 싱겁던 '록키' 두고두고 남던 감동

"난 보잘것없는 인간이야. 하지만 상관 없어. 시합에서 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아폴로가 내 머리를 박살내도 별로 상관이 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끝까지 가진 못했거든. 내가 그때까지 버티면,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고리대금업자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는 록키 발보아(실베스타 스탤론). 그가 이제 처음으로 뭔가를 이루려고 한다. 그는 승리하려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를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록키'(1976년)는 필라델피아 뒷골목 한 젊은 복서의 위대한 인간승리를 그린 걸작 스포츠영화다. 어린 나이에 이 영화를 보면서 사실 좀 싱거웠다. 주인공이 아폴로를 때려눕혀야 되는데, 시종 치고받다가 결국 무승부로 끝나고 아폴로는 세계 챔피언 벨트를 지킨다. 이겼다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진정한 승자는 록키 발보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각의 링에서 끝까지 버텨 살아남겠다는 그의 말은 승패의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인간존재의 고양된 의식까지 건져 올리며 가슴을 때린다.

스포츠영화는 늘 감동스럽다. 생전 처음 눈을 본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의 불굴의 의지도 감동스럽고, '리멤버 타이탄' '인빅터스''파워 오브 원' 등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랬다.

이번 주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가 개봉되면서 야구영화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국가대표'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는 허영만의 만화 '제7구단'을 원작으로 한 작품. 중국 서커스단의 고릴라 링링이 한국 프로야구단에 입단해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야구를 배경으로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그린 스포츠 휴먼 드라마다. 올여름 촬영에 들어가 내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 투수 최동원과 선동열의 실제 대결을 그리는 '퍼펙트게임'도 올해 촬영에 들어간다. 1987년 5월 최동원(롯데 자이언츠)과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이 연장 15회까지 던졌지만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경기를 중심으로 두 선수의 명승부뿐만 아니라 여러 동료 선수들의 고뇌를 녹여낼 예정이라고 한다. '주유소 습격사건' '광복절 특사'의 김상진 감독이 연출할 '투혼'은 왕년에 전설적 투수였지만 2군으로 떨어진 주인공이 병석에 있는 아내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이야기다.

한국 스포츠영화는 그동안 지나치게 신파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역력한 통속적인 이야기를 에피소드 중심으로 풀어낸 것이다. 감동을 역설하고, 눈물을 쥐어짜고, 목덜미를 잡고 "이래도 안 울래"식 우격다짐이 없지 않았다. 이번에는 '록키'처럼 진중하면서 두고두고 가슴을 울리는 스포츠영화를 기대해 본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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