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주영의 스타 앤 스타] 영화배우 정재영

'글러브' 퇴물 야구감독으로 이미지 또 변신

이 배우 안 늙을 줄 알았다.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의 그 순박한 시골 청년의 모습에서도, '아는 여자'에서 어리바리한 2군 야구선수나 '김씨 표류기'에서 외딴섬에 갇힌 실직자, 또 '바르게 살자'에서 정말 바른 일만 하려는 외골수의 이미지는 배우 정재영을 친근한 우리 동네 아저씨나 형으로 각인시켰다. 그런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가만히 살펴보면 그저 순하지만은 않았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투견장 중간보스로 밑바닥 인생의 절정을 보였고, '실미도'에서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살해한 살인자의 모습을 유감없이 펼쳐냈다. '공공의 적 1-1'도 만만치 않았다. 겉은 번지르르한 건설사 CEO지만 속은 지독하리 만치 잔인한 조직의 보스로 이중인격 캐릭터를 실감나게 토해냈다. 최근작인 '이끼'의 악랄한 이장의 아우라는 아마도 그가 가진 '악'(惡)한 기운의 결정체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예전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낯가림이 심해서 첫인상만 보고 판단하려 했어요. 만나기도 전에 '저 사람은 좋을 것, 아니면 나쁠 것이다'란 것을 예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바뀌게 되더라고요. 속단이란 것이 없어진 것이죠."

정재영은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 편해졌다는 의미 때문인지 그의 얼굴도 환해보였다. 그런데 정재영은 자신이 제일 어색하게 생각하는 것이 웃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진 찍는 일은 데뷔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어렵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 모습은 영락없이 그가 최근 주연으로 나선 영화 '글러브'의 빡빡머리 고등학생과 비슷했다.

그는 영화 '글러브'에서 프로야구 MVP 출신의 명투수에서 퇴물로 전락한 김상남 역을 맡아 말도 안 통하고(?) 꽉 막힌 만년 꼴찌팀 청주성심학교 야구부원들과 생애 첫 1승을 향한 도전에 나서는 모습을 그린다.

"야구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보니 출연진들의 체력적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사실 저는 이번에 감독으로 나오기 때문에 고생이 크지는 않았지만, 야구부원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내가 보기에 '실미도' 때보다 더 힘들었겠다 싶더라고요. '실미도' 때는 마냥 뛰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까지고 부러지고 말도 아니었어요."

촬영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힘들었다"는 것을 말할 때 특유의 억양이 세졌다. 대신 자신은 오히려 힘든 것이 거의 없었다고 강조하면서 대부분의 공을 함께 공연한 어린 후배들에게 돌렸다. 정재영은 "특히 경기 장면 찍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투수가 놓치려 하다 잡는 장면이 압권이었다"며 "영화 속에서는 아마 몇 초 나올 한 장면을 위해 서른 컷 이상을 반복했는데, 그 마지막 오케이 사인이 났을 때 모두 감동에 사로잡혀 울고 말았다. 영화로 그 진한 감동이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글러브'는 '한 번 해보자' 하는 이른바 루저들이 모여 1승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실패할 때마다 '안 되는구나'가 아니라 '더 노력하자'라고 마음을 먹게 되죠. 비겁하게 피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승부를 하는 모습, 그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정재영의 '글러브'에 대한 확신은 유난히 돋보였다. 그는 이 모든 중심에 강우석 감독이란 거함이 있다는 것에 엄지를 추켜세웠다.

"제가 장진 감독과 참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장 감독에게는 코미디를 배웠거든요. 그에 반해 강우석 감독에게는 에너지를 배웠습니다.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이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강 감독은 촬영을 마치면 항상 술자리를 갖는데요. 그 자리에서 연기나 그날 촬영했던 일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몰입이거든요. 그 집중력이 에너지고요. 정말 존경스러운 부분이죠."

사실 정재영 역시 연기 데뷔한 지 올해로 딱 15년째다. 나이도 불혹을 갓 넘긴 41세가 됐다. 이제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하는 때이고, 공자 역시 '이치를 알아가는 때'라고 했다. 그는 과연 자신의 현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예전의 불혹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요새 결혼 적령기도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바뀌었고, 모든 게 10년 씩 당겨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따지면 제가 40이 아니라 30이잖아요. 그러니 30 먹은 사람이 뭘 알겠어요. 전 불혹이 아니라 여전히 30입니다."(웃음)

정재영은 끝까지 철 들고 싶지 않다고 거듭 밝히면서 자신의 연기관도 살짝 털어놨다. 그는 "질리지 않는 꾸준한 배우로 보이고 싶은 게 내 꿈"이라며 "볼 때면 그냥 쭉 보는데 막상 지나고 나면 안 질리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야구와 연기가 참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공부를 못하든 잘하든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분야에서 인정받으려면 굉장히 잘해야 하죠. 프로야구 선수가 되거나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은 극소수니까요. 결국 극중 대사에도 있지만 '너희들이 흘린 땀만 믿어라'가 정답인 거 같아요. 저도 앞으로 그러려고요. 제가 흘린 땀만 믿으려 합니다. 정재영의 땀방울 믿어주세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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