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쭉 뻗은 철도길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깃발을 흔드는 역장이 되고 싶었다. 기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했고, 기차가 달리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가슴 속이 후련해졌다. 나도 그 기차처럼 달리고 있었다."
이천세(60) 코레일 상임이사 여객본부장은 오직 한 길만 달려온 '철도 달인'이다. 고교 졸업 후 국비 철도전문 교육과정에 진학한 그는 강원도 철암역 수송원으로 코레일과 첫 인연을 맺었다. 꿈에 그리던 역장도 여러 곳 거쳤다.
"강원도 쌍룡·영월역장으로 근무할 때인 1991년이었습니다. 그땐 기차역이 주민들의 휴게실이자 시골 어르신들의 경로당 역할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갈 만한 곳도 놀 만한 곳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때 '많은 주민들이 찾는 역은 우선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근하면 화장실로 가 직접 청소를 했죠. '역장이 화장실을 청소하더래요'하는 입소문이 나면서 시골역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열차 시각표를 다시 붙이고, 화장실에도 스피커를 설치해 기차 시각을 알리자는 의견도 받아들였습니다. 화단을 가꿔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도 조성했고요. 당시 전체 주민이 1천여 명이었는데 이런 노력 덕분인지 우리 역의 관광열차는 늘 만석이었습니다. 다른 역에서는 객차 1량도 채우지 못할 때였습니다."
이 같은 시골역장 경험이 지금의 '고객중심경영'의 기틀을 닦았다. 그 뒤 여객전무, 역장을 거쳐 고객담당관실, 영업본부 여객영업과장, 일반철도사업본부장, 대전지사장 등을 거친 그는 여객본부장으로 철도경영에 뛰어들게 된다.
'답은 늘 고객으로부터 나온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이 본부장은 자신의 철도철학의 답을 '크레이지 경영'에서 찾고 있다.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신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긍정의 힘으로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최고의 서비스를 펼치고 싶다"며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말햇다.
2006년 이 본부장은 고향인 김천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충북 영동에서 경북 칠곡, 점촌까지 관할하는 '경부(京釜) 남부지사장'으로 부임했다. 코레일이 김천에 지사를 신설했는데 초대지사장으로 발령받은 것이다.
"고향이라서 더 마음이 푸근했습니다. 곳곳에 선·후배들과 동료들이 있었고 지역민들이 원하는 철도의 발전방향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각종 신상품 개발에 나섰지요. 1사1촌, 1사1교 등으로 지역 내 벽지와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서울에서 김천을 잇는 '자두따기 체험열차'도 그때 만든 열매지요."
이제는 열차관광상품의 대명사로 통하는 '와인인삼트레인' '미션임파서블 프로젝트' '테마관광열차' '바다열차' '경북순환관광열차' 등도 이때의 경험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는 요즘 입사하는 코레일 신입사원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캠퍼스의 낭만도 모른 채 도서관에서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가까이에서 보니 지적이면서도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어요. 자기 주장을 분명히 밝히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내놓습니다. 다만 기성세대와 상호 존중하는 마음, 스스로의 부족함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조금 아쉽더군요."
코레일은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도약한다. 지난해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이 완전 개통한 데 이어 올 10월 전라선 복선전철이 개통돼 여수까지도 KTX가 운행된다. 2012년에는 인천공항까지 KTX가 운행되고 2014년에는 호남고속철 오송~광주, 수도권고속철 수서~평택 구간 및 포항까지 KTX가 연결된다. 전국이 90분 생활권으로 재편되는 셈이다.
그는 "철도가 철을 만났다"며 "더불어 어깨가 무거워진다"고 말했다. 오늘도 그는 기차역을 출발하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뜨거운 박수를 치고 있다. 아직도 그는 기차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린단다. "쭉 뻗은 철길 주변에서 놀았던 제가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 본부장은 금릉중, 김천 중앙고를 거쳐 방송통신대(행정학)와 고려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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