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차문화 대(代) 잇기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차를 우리기 위해 먼저 물부터 끓이고 다관과 숙우, 찻잔을 예열하여 차를 준비한다. 아침은 하루의 일과를 계획하고, 차문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나의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차문화를 즐기게 된 것은 오로지 친정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머니의 차생활은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어느덧 3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겼다. 결혼 후 딸 여진이를 낳고 어머니에게 다례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전통을 강조한 차문화의 엄격함이 마음 깊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잔의 차를 우리기 위해 좋은 차, 알맞은 물의 온도, 기다림을 배워가는 느림의 미학인 차문화가 좋아졌고 내 마음에 점차 와 닿았다. 내가 차문화에 점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면서 딸 여진이도 서서히 차와 가까워졌을 것이다.

어머니께서 간식으로 주셨던 우유말차와 녹차의 맛과 향은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 년 내내 푸르렀던 집 마당의 차나무와 가을이면 하얗게 피는 차꽃은 지금까지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지난가을 어느 날 보름달이 훤하게 마당을 비추고 차꽃이 달빛에 반사되어 더 하얗던 날, 차꽃과 달이 친구 되어 찾아와주는 날이 너무 행복하다며 따뜻한 차 한잔을 우려 주시던 어머니. 그래서 이런 행복함으로 평생을 차나무를 키울 수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하신다.

늘 차생활을 즐기시는 어머니의 한복 입으신 단아한 모습은 차꽃을 닮은 듯 아름답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는 진정한 차인으로 살아가는 어머니를 존경한다.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할 만큼 학문과 차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으시다.

그 뒤를 이어 나도 차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것을 보면 어머니의 제자로서 차를 사랑하고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이다. 딸 여진이도 차문화를 점점 좋아하고 있어 3대가 나란히 차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문화가 앞서는 나라가 분명 선진국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빠른 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느린 문화를 선호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1대인 어머니가 차를 우리는 과정을 중시하는 차문화의 보급과 확산에 치중했다면 2대인 나는 차문화의 정립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고 3대인 여진이는 차문화를 정신문화의 꽃으로 활짝 피워 나가는 세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나와 여진이는 차학문에 더욱더 정진하고 어머니를 본보기 삼아 후회 없는 차생활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대구세계차문화축제 사무총장 김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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