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6·2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4월 한나라당 경북도당에서 열린 공천심사위원회 회의장. 회의 도중 후보자 A씨와 지지자 20여 명이 경북도당 사무실에 몰려와 사무집기를 부수며 소동을 벌였다. 여성 당직자들의 비명과 고성이 오갔다. 공심위 회의장 진입을 막으려는 몇몇 당직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결국 회의장 안에까지 밀고 들어가 난장판이 됐다.
#2.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 대구시당 공천심사위원이던 두 명의 외부 공천심사위원이 갑작스레 사퇴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공천 심사에 원칙과 기준이 없고, 외부 공심위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공천 심사에서 국회의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공심위원들이 역할이 없었기 때문.
정치권이 지방자치를 도와주고 힘이 돼 주기는커녕 오히려 지방자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핵심은 정당공천제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정치권이 지방자치에 깊이 개입하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대구경북의 경우 '한나라당 공천=당선' 등식이 성립하면서 선거 때만 되면 출마자들은 한나라당 공천에 목을 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당공천제가 정치 부패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실제 한 전직 광역의원은 "더 이상 돈을 주고 공천을 받는 일은 하지 않겠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 무력화=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다.
2005년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허용된 이후 대구경북은 한 정당이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모두 장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6·2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인 김범일 대구시장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나란히 재선에 성공했다. 기초단체장은 대구가 8명 중 6명, 경북은 23명 중 16명이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대구시의원은 29명 중 28명, 경북도의원 58명 중 48명이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됐다.
기초의원의 경우 한나라당 독식 구조가 다소 완화됐다. 대구 중구의회는 7명 중 3명, 구미의회는 23명 중 1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문경의회는 10명 중 4명, 칠곡의회는 10명 중 5명이 한나라당이다. 경산은 13명 중 8명, 영주는 12명 중 7명이다. 지난 선거에서 비한나라당이 과거에 비해 돌풍을 일으켰지만 이들의 정치적 성향 또한 한나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정당공천제가 지속되는 한 출마자들은 주민이 아닌 정당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공천권이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면서 줄세우기, 밀실공천, 공천헌금 등 온갖 폐해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세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회통합위원회는 최근 건전한 지방자치를 위해 인구 50만 명 이하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한해 정당 공천을 한시적으로 없애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당공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 커다는 이유에서다.
3선 군수를 지낸 박영언 전 군위군수는 "정당공천제가 부조리의 근간"이라며 "지역 주민보다 공천을 준 사람을 더 의식하게 되고, 고유업무보다 공천을 준 정치인을 더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이 공천을 주기 때문에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이 몰려들게 되고, 그것이 독선과 독단을 낳는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기초정당공천폐지국민운동 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은 "지방정치가 중앙에 예속된 탓에 지방에서 요구하는 목소리가 중앙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오히려 중앙의 논리가 지방에 전파되면서 지방자치가 실종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정당, 대안 되나=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에 한해 정당공천제 폐지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다. 오히려 정치권이 기초의원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꿔 정당공천제를 더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지역정당 창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일고 있다.
독일의 경우 가장 낮은 지방자치 단위인'게마인데'에서 유권자 단체들이 지역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이를 본받자는 것이다. '자유유권자연대', '일반유권자공동체' 등의 유권자 단체들은 실제 게마인데 의회에서 상당한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자유유권자연대'는 각 지역정당의 연합으로 전국 조직을 갖고 있고 2008년 바이에른 주의회 선거에서 제3당을 차지하기도 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현행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지역정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세헌 경북대 교수는 "결국 유권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소속 정당에 상관없이 능력과 비전을 지닌 지역 일꾼을 뽑을 수밖에 없다"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선거공영제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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