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1세기 실크로드] ③로마에서 시안 그리고 신라까지

서역상 낙타방울 소리 머금은 로만글라스, 천년 만에 경주서 햇빛

현장 스님의 동상이 시가지를 바라보며 서 있고 그 뒤로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다는 자은사의 7층 대안탑이 보인다.
현장 스님의 동상이 시가지를 바라보며 서 있고 그 뒤로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다는 자은사의 7층 대안탑이 보인다.
중국 시안의 자은사 대웅전 앞에 피어오르는 향불. 천년 전에도 실크로드를 통해 먼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향을 피우며 안전을 기원했을 것이다.
중국 시안의 자은사 대웅전 앞에 피어오르는 향불. 천년 전에도 실크로드를 통해 먼 여행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향을 피우며 안전을 기원했을 것이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193호 봉수형 유리병.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돼 신라로 들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193호 봉수형 유리병.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돼 신라로 들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연구가인 요시미즈 츠네오씨가 집필한
역사연구가인 요시미즈 츠네오씨가 집필한 '로마문화 왕국-신라'라는 연구서의 표지.

중국 시안(西安)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현장 법사와 관련 있는 대안탑은 진시황 병마용에 이어 필수코스이다. 7층탑이 서있는 대안사 법당 앞에는 큰 향로가 놓여있는데 간간이 빗줄기가 뿌렸으나 불이 꺼지지 않고 향도 잘 피어오르고 있다. 부근 매점에서 향을 샀다. 실크로드 여행의 출발점에 서 있는 모든 일행들이 무사히 먼길을 다녀올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향을 피웠다.

시안은 천년 전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이었을 때 이미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14세기 초 그곳에 왔던 마르코 폴로는 이 도시를 '번창하는 교역중심지'라고 묘사했다. 1천100년 동안 11개 왕조의 도읍지로 자리를 굳혀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우리의 승려들도 불법을 구하기 위해 장안으로 들어갔다. 신라의 원광, 원측, 혜초, 자장, 의상 등 뛰어난 구법승들이 앞다퉈 건너갔고 고운 최치원(崔致遠)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 당나라의 승려들은 서역을 거쳐 인도(천축국)를 찾아갔다. 이들은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고 많은 경전을 가져와 불교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대표적인 사람이 현장과 혜초이다. 손오공이 활약하는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 법사는 실크로드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사람이다. 신라 왕족이었던 혜초도 현장에 뒤이어 인도를 다녀온 후 중국에서 생을 마쳤다.

불교문화의 전래에 있어서는 이처럼 시안과 인도 사이를 오갔지만 상인들은 인도뿐 아니고 로마까지 진출했다. 서역상인들도 낙타방울을 울리며 로마의 진귀한 물건을 장안은 물론 동쪽 끝 신라의 경주까지 전해주었다. 천년 전에 일어났던 이 같은 일들은 신라 왕릉의 부장품을 통해 오늘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그 옛날 로마에서 들여온 아름다운 유리잔을 볼 수 있다. 신라의 상류사회에서 사용했던 로마 유리제품 즉 로만글라스는 황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신라에서는 유리제작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귀중품들은 로마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추정되고 있다. 실크로드를 다녀 온 후 경주박물관을 찾았다. 보물 624호로 지정된 나뭇결 무늬 유리잔은 유럽에서 유행했던 후기 로만그라스라고 한다.

특히 천마총에서 나온 보물 620호 유리잔은 높이 7㎝ 정도의 조그마한 크기에 신비스러운 푸른 색상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이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작은 잔이 어떻게 해서 멀고먼 유럽 땅을 떠나 험난한 실크로드를 지나 경주까지 왔으며 신라인에 의해 사용되다가 이제 천년세월이 흐른 지금 눈앞에 놓여 있을까. 경주박물관에는 그 밖에도 서역에서 온 유물들이 많이 존재한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국보 193호 봉수형 유리병은 지중해 연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실크로드 키질 석굴의 벽화에 나오는 보검과 유사한 보물 635호 계림로보검, 서역인의 얼굴이 묘사된 상감유리목걸이, 수염 긴 문관상을 묘사한 토용, 괘릉의 무인상 등은 신라와 서역과의 교류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중국 시안에서 출발한 실크로드 상인들은 로마까지 왕래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을 실크로드와 연결해 보면 '모든 길은 시안으로 통한다'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시작과 끝을 로마와 시안이라고 하기보다 로마와 경주라고 하는 편이 우리들에게는 흐뭇하게 들린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 유리공예가이며 역사연구가인 요시미즈 츠네오(由水常雄) 씨가 집필한 '로마문화왕국-신라'라는 연구서에 나오는 내용들. 그는 30년에 걸친 연구 결과로 로마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신라는 그 반대편, 동쪽의 끝에 있는데 이 두 나라 사이의 교류와 고대 신라에 유입된 로마문화의 비밀을 거론하고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신라는 당나라를 거치지 않고 로마와 직거래를 했다며 물증을 들어 열거했었다.

오늘날 대안탑 앞에는 광장이 있고 현장의 동상이 시가지를 바라보며 서 있다. 이곳은 당시 방대한 불경들을 한자로 번역했던 장소라고 한다. 법당 앞에 놓인 대형 향로에는 한자로 불경과 소원이 적혀 있는 큰 향들이 꽂혀 있다. 왕복 17년 동안 현장은 목숨 걸고 오로지 한 가지, 구법의 길을 무사히 다녀왔다. 그가 가져온 소중한 경전과 불상을 보관하기 위해 탑은 652년에 세워졌고 이 향불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후 신라승 혜초도 사막에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먼길 떠날 마음의 채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 옛날 인도로 떠나는 구법승들이 대안탑 앞에서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향을 올렸듯이 스님도 이곳을 방문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을 남겼고, 대안탑의 향불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글: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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