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28년 숨어 산 일제 패잔병 요코이

1972년 오늘 미국령 괌의 탈로포포강에서 거지꼴의 한 남자가 새우 통발에서 새우를 훔치다 마을주민에게 잡혔다. 신원 확인 결과 1944년 괌에 배치된 옛 일본군 보병 38연대 소속 요코이 쇼이치(橫井庄一'1915~1997) 하사였다. 일본이 항복한 줄도 모른 채 28년을 숨어살아 왔던 것이다.

아이치(愛知)현에서 양복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35년 징집돼 1939년 제대했으나 2차 대전의 발발로 1941년 재소집돼 만주를 거쳐 괌에 배속됐다. 괌이 미군에 점령되자 땅굴을 파고 숨어살았다. 작은 물고기와 나무열매 등으로 연명했으며 옷은 나무껍질의 섬유질로 직접 짜입었다. 같이 숨어살던 동료 두 명은 8년 만에 죽었지만 그는 끈질긴 생존능력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귀환에 일본 열도는 열광했다.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一聲)에 일본인은 눈물을 찍어냈고 '낡은 99식 소총을 천황폐하께 반납한다'는 보고에 감격(?)했다. 일부 언론이 탈영 의혹을 제기했지만 감동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귀국 후 결혼도 하고 '서바이벌' 전문가로 활발한 강연활동도 했다. 일본인은 그에게서 '대일본제국'의 아련한 기억을 불러냈지만 그는 군국주의에 청춘을 빼앗긴 희생자였을 뿐이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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