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참 멀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면서 구미 시민으로 사는 내게, 서울특별시는 특별한 일정으로 가서 바쁘게 돌아오는 세계 속의 도시이다. 지하철을 갈아타거나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 인사동이나 대학가를 바쁘게 다녔을 뿐. 한 번도 생활의 터전으로 삼을 기회가 없었다.
물리적 거리보다 중심에서 살지 못한 정서적 거리도 만만찮다. 일본 여행 중 때마침 퇴근 시간의 '긴자'(銀座) 거리를 지나며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도쿄만큼도 서울에 대한 체험이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워의 도심에 갇혀본 적도, 밤길을 가족과 함께 천천히 걷거나 야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은 적도 없다. 같은 말을 쓰는 내 나라의 수도에 대해 텔레비전으로 본 기억이 더 생생하다.
대구 동성로는 내 청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거리다. 중'고교 시절 6년을 버스로 지나다녔다. 몇 번 가보진 않았지만 내 나이보다도 오래된 음악감상실이 사라진다는 소식에는 가슴이 먹먹해온다. 지금은 더 높은 타워도 있지만 앞산공원에서도 온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 비 오는 날, 산정의 찻집에서 바라보면 도시는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그림으로 비에 젖는다. 봄이 오는 수성못, 삼덕동의 낙엽길이며 시원하게 뻗은 동대구로의 키 큰 나무도 눈 감으면 금방이라도 그 풍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만 같다. 신천대로를 지나 대구를 벗어날 즈음,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금호강이 보이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아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고향에 대해 인색하고 삭막하게만 여기던 내가 이제라도 복원해 낸 기억이다. 나야말로 꼭 맞고 편해서 고맙고 행복했건만, 서울로 진학하는 친구들이 부러워 고향이란 말조차 싫었던 적이 있다. 근래엔 전국의 모든 대학을, 수도권에 소재한다는 의미의 서울대와 지방대로 나누기까지 한다니, 요즘 아이들이 지방에 대해 느끼는 열패감이 너무 깊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생활권을 좁혀오는 동안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졌으니, 지방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미안하고 답답하다.
바야흐로 대학입시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지방대 졸업생에 대한 벽이 높다지만 자기만의 새로운 힘으로 당당히 맞서야 한다. 미래는 국경도 없이 가까워지는 세계를 향해 열려있고, 중심이란 사람을 기준으로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으니까. 지금 어디에 있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지루해도 기어이 다가오는 찬란한 봄 소식을 전하고 싶다. 행복은 멀리에 있지만은 않다. 세계 속의 수도 서울도, 누군가에겐 그리운 곳이며 또 새로운 고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윤은현 경일대 외래강사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탄핵 집회 참석한 이원종 "그만 내려와라,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