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 농구 동호회 '파이브 파울' 회원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손발을 맞춰왔다. 그런데도 정작 회원들은 누가 어떤 일을 하고, 가족관계가 어떤지를 잘 모른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농구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여기서는 이름, 나이 외에는 다른 걸 캐묻지 않아요. 형 동생 서열만 가리죠. 운동하려고 모였으니 신나게 달리고, 목청껏 고함치며 실컷 땀 흘리다 가야죠. 골 넣은 뒤 하이파이브 한번이면 기분은 최고죠." 이 불문율은 파이브 파울을 15년 넘게 유지시킨 힘으로 작용했다.
◆슬램덩크 꿈꾸는 아저씨들
농구를 즐기는 연령층은 보통 10, 20대다. 빠른 공수 전환을 해야 하는 경기 특성상 순발력과 유연성, 지구력 등을 두루 갖춰야 하고 몸을 부딪쳐야하는 상황도 잦다. 점프가 많아 무릎이 시원찮으면 코트에 들어서겠다는 용기를 내기도 힘들다. 웬만한 체력 없이는 경기를 치러내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고교 때나, 대학에서 농구를 취미삼아 했던 이들도 30대가 넘어서면 '하는 농구'에서 '보는 농구'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고려한다면 파이브 파울 회원들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들이다. 20대 후반의 회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30세를 넘겼고 최고 연장자는 45세에 이른다. 배가 나오는 등 날렵해 보이지 않는 회원도 있다. 하지만 코트에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물 찬 제비가 된다. 움직임만 봐서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직장을 가진 사회인 동호회이다 보니 '다치지 않고 즐겁게 농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막상 시합을 할 땐 모두 잊고 만다. 공을 좇다 보면 결렬해지는 순간이 태반이다. 다행인 건 회원 대부분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사이여서 서로의 동작을 미리 알고, 배려하는 마음까지 더해져 큰 불상사는 없다. 그래도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기초체력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 최고령이며 이 동아리를 창단한 박대섭(45) 씨는 나이 때문에 뒤처진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남몰래 체력을 기르고 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죠. 그래도 농구가 좋으니 어쩌겠어요. 일주일 딱 한번 하는 농구모임을 갖기 위해 평소 걷고 달리며, 때로는 사이클을 하며 체력을 기르고 있죠. 기초 체력훈련을 게을리 했다 싶은 주에는 숨이 차서 제대로 뛰지도 못해요." 손을 떠난 공이 림으로 빨려드는 짜릿함을 맛보려 이들은 15년을 한결같이 코트에 서고 있다.
◆15년 팀 유지 비결은 '즐기는 농구'
파이브 파울은 지난해 말 조졸하지만 뜻 깊은 창단 15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그러면서 대대적인 회원정리를 했다. 이름만 올려놓고 모임에 참가하지 않는 회원들을 명단에서 뺐다. 모임의 위세보다는 내실을 다져 앞으로 15년을 함께 가자는 취지에서였다. 회장 최영열(31) 씨는 "그동안 수많은 회원이 입단했고, 또 많은 회원이 도중에 그만뒀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하게 모임에 참석하는 회원을 추려보니 19명이 남더군요. 대부분은 10년 이상 함께 운동을 해온 회원들입니다. 진짜 파이브 파울 멤버들이죠"라고 했다.
파이브 파울은 창단부터 지금까지 깨지 않고 지켜오는 원칙들이 몇 가지 있다. '농구를 통해 웃는다. 오가는데 강제성을 두지 않는다. 모임은 매주 금요일 오후 8시로 한다. 뒤풀이는 간결하게 하며 술은 자제한다'는 등이다. 농구를 빌미로, 또 친분을 내세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인지 이 모임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달 14일 오후 8시 대구 남구 봉덕동 대구 오리온스센터에서 만난 회원들은 결석했다고 전화를 걸거나, 늦었다고 다른 회원을 구박하지 않았다. 먼저 온 회원은 몸을 풀고, 성원이 차면 연습 경기를 했다. 어떨 땐 2명밖에 나오지 않아 시합을 못한 채 연습만 하다 간 적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언성을 높인 일은 없었다고 했다. 올해로 11년째인 김상훈(31) 씨는 2년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다 지난달에 코트로 돌아왔다. 김 씨는 "칠곡 왜관에 직장을 얻는 바람에 한동안 참석을 못했다"며 "함께 땀 흘리며 몸을 부딪친 추억을 잊지 못해 시간을 낼 수 있는 형편이 되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운동시간을 못 박은 것도 예전 회원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즐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여태껏 시합출전은 딱 한번뿐이었다. 지난해 말 경주에서 열린 사회인농구대회가 처녀출전이었는데 참가한 12팀 중 3등을 차지했다. 실력도 갖췄다는 증거다.
◆그들만의 리그
10년 이상씩 농구를 해 온 만큼 회원들은 비평가 수준의 해박한 농구지식을 갖고 있다. 국내 프로농구는 물론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이름까지 줄줄 꿰는 회원도 있고, 농구의 각종 전략, 전술에 능통한 회원도 있다. 11년 동안 파이브 파울에서 뛰어온 최승관(29) 씨는 대구 오리온스 서포터스 회장이다.
최 씨는 "중학교 때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농구를 즐기게 됐고 농구가 좋아서 농구장을 쫓아다니다보니 서포터스 대표까지 맡게 됐다"며 "직접 코트에서 뛰니 선수들의 플레이와 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농구심판 공부를 해 농구와 인연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사회인동호회이지만 프로농구단에 못지않을 만큼 체계적인 일정으로 시즌을 보낸다. 12월에 신임 회장과 총무 등 임원진을 뽑고, 1월에는 회원들을 A, B조로 나눠 4월까지 전반기 리그를 치른다. 각 팀은 감독을 포함해 11명씩 구성되는데 지난해 말 많은 회원을 정리하다 보니 현재는 3명이 모자란다. 각 팀에 소속된 회원들은 정해진 포지션을 갖고 정기전을 치르며 전반기가 끝나면 각 팀이 전력보강차원에서 트레이드도 단행한다. 매달 두 차례 치르는 정기전은 경기내용뿐만 아니라 개별 선수들의 활약을 기록해 연말에는 자체 시상식도 연다.
"농구는 다른 구기종목과 종목과 달리 득점이 많은 경기여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코트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일주일 간 쌓인 스트레스는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죠."
파이브 파울 회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유난히 추운 이번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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