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장수에 대한 불편한 진실

'그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는 이렇게 시작되고 끝난다. 책의 도입부와 종결부가 똑같은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젊은 엄마의 애절한 사망선언도 해야 하는 나는 가끔 죽음의 중지를 바라곤 했다. 나의 바람이나 소설은 물론 황당한 이야기이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더라도,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죽지 않고 그 상태로 멈춰버린다. 불로(不老)가 아닌 불멸(不滅)인 삶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의 중지가 마냥 환영할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 속속 드러난다.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의 고령화는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혼란과 갈등을 현실에서 경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고무줄처럼 쭉 늘어난 수명에 우리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눈부시게 발전하는 생명공학의 발전, 공중보건 향상 그리고 의료기술의 발전 등으로 우리나라는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평균 수명은 2010년 81세, 2050년 83세로 전망한다.

'인생의 마지막 여관'인 평온관에서는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폐암을 수술하고 극복한 60대 중반의 아들이 말기 식도암이신 90세 아버님을 모시고 오는 세상이다. 신 할머니(77)는 남편 박 할아버지(78·대장암 말기)를 간호하다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3년 전 박 할아버지는 대장암으로 인공소변 주머니와 대변 주머니를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 골반 내의 장기와 뼈로 전이가 됐지만, 수술 후 힘든 투병생활을 잘 견디셨다. 3개월 전 항문 근처에 고름주머니가 생겨서 모대학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때 간병을 하시던 할머니가 기침이 계속 돼 검사해보니 말기 폐암이었다. 신 할머니가 먼저 호흡곤란으로 평온관에 입원했고, 그 맞은편 침대에 박 할아버지가 전원돼 왔다. 노(老)부부는 평온관 301호에 말기 암으로 같이 입원 중이다.

섬망이 심해서 전원돼 온 김 할아버지(80·폐암 말기)의 사정도 딱하다. 할머니가 중증치매로 일년 이상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기 때문에 가족이 정성스럽게 돌보아 줄 수가 없었다. 10년 전에 아들을 먼저 보낸 황 할아버지(81·췌장암 말기)는 그 충격으로 암이 왔을까? 나쁜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잘 지낸다. 이러한 평온관 이야기는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진실이다.

어느 소아암 환자는 "삶은 생명의 건전지가 다 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1930년대부터 72년간을 추적 조사한 하버드대 연구팀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는 답을 찾아왔다.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법칙인 것 같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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