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컬 프런티어] 대구파티마병원 정형외과 조영호 과장

진단조차 어렵던 고관절 이상, 관절경 이용 '획기적 치료'

대구파티마병원 정형외과 조영호 과장은 국내에서도 몇 명 안되는 고관절 관절경을 다루는 의사다.
대구파티마병원 정형외과 조영호 과장은 국내에서도 몇 명 안되는 고관절 관절경을 다루는 의사다.

대구파티마병원 정형외과 조영호 과장은 고관절(엉덩이관절)을 주로 다룬다. 인공고관절을 비롯한 갖가지 질환을 진료하지만 특히 관심있는 분야는 고관절 내시경(관절경)이다. 인공관절은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지만 고관절 관절경은 시작된 지 아직 10년 정도밖에 안된데다 국내에서 이를 주로 다루는 의사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관절경은 내시경처럼 작은 관을 관절에 집어넣어 진단과 치료를 하는 수술법이다. 무릎관절에서는 보편화됐지만 아직 고관절에서는 개척 분야나 마찬가지다.

◆진단이 쉽지 않은 비구순 파열

"환자는 불편함과 통증을 호소하는데 의사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합니다. 의사 자신이 아는 병에만 환자를 맞추기 때문이죠. 게다가 고관절에 생긴 이상을 찾아내지 못해서 척추 수술까지 받고 오는 환자도 있습니다."

고관절은 엉덩이 골반뼈와 넓적다리뼈를 연결하는 부위다. 그중에서 골반뼈에 붙어있는 움푹 들어간 곳을 '비구'라 부르고, 넓적다리뼈(대퇴골)의 맨 위쪽에 있는 공처럼 생긴 부위를 '대퇴골두'라고 부른다. 흔히 고관절 질환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대퇴골두로 가는 혈류가 막혀 뼈조직이 죽는 것)와 같은 심각한 질병이다.

"무혈성괴사 외에도 고관절에 이상을 일으키는 질병은 많습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구순 파열'이 대표적이죠. 비구 끝에 붙어있는 연골조직인 비구순이 찢어지는 겁니다. X-선으로 보이지 않아 진단이 쉽지 않습니다."

비구순 파열은 고관절을 다루는 의사들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비구순 파열 환자는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 3년간 다른 곳을 돌아다닌 뒤에야 제대로 다루는 의사를 만난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다.

"바닥이나 낮은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 쭈그린 상태에서 일어날 때, 옆으로 잠 자다가 다리를 구부릴 때 사타구니(서혜부)에 통증을 느낀다면 비구순 파열을 의심해야 합니다. 흔히 엉덩이 뒤쪽이 아플 때 고관절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이런 경우는 고관절과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척추 이상인 경우가 많죠. 결국 엉뚱한 곳을 찾아가게 됩니다."

조 과장이 처음 진료한 '비구순 파열' 환자도 3년간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가 찾아온 경우였다. 물리치료는 물론 정형외과, 신경외과 등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비구순 파열 때문에 걷지 못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저 불편하고 아플 뿐이죠. 게다가 MRI도 잘 찍어야 판독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쉽게 잡아낼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

◆관절경으로 고관절 치료해

비구순 파열이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노화와 함께 '대퇴골두 충돌증후군'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반구형 조직인 대퇴골두 바로 아래쪽은 목처럼 잘록하게 생겨야 정상. 하지만 이 부위에 변형이 와서 굵어지면 비구순과 충돌이 생긴다. 결국 비구순이 찢어지고, 비구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며, 심한 경우 비구내에 있는 연골조직을 파괴하기도 한다.

"비구순이 관절 안쪽으로 말려들어가면 통증이 심합니다. 걷지도 못할 정도가 돼죠. 노화나 충돌증후군 외에도 고관절이 틀어지는 격한 운동이 반복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고관절을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를 수 있고, 결국 인공고관절로 대체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조 과장은 비구순 파열 등의 질환 수술을 고관절 내시경(관절경)으로 한다. 무릎관절이나 어깨관절에 시행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상처가 적고 회복이 빠르며 입원 기간이 짧은 장점이 있다. 다만 고관절의 경우, 수술 부위의 해부학적 구조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숙련된 기량이 필요하며 수술에 소요되는 장비도 많아서 이를 시행하는 병원이 많지 않다.

수술은 고관절 주위에 지름 5~8㎜ 크기의 구멍을 2, 3개 뚫고 관절경을 집어넣어 모니터를 보면서 찢어진 비구순을 꿰매거나 너덜너덜해진 부위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농성 관절염, 관절내 유리체(관절 안에 떠다니는 부스러기) 제거 등도 가능하다. 심지어 충돌증후군을 일으키는 뼈의 변형도 치료가 가능하다. 비정상적으로 굵은 뼈 부위를 깎아내는 것도 관절경으로 이뤄진다. 수술이 간단한 경우, 이틀 정도면 퇴원할 수 있고, 복잡한 수술이라도 5일 정도면 충분하다.

◆솔직하고 믿음 주는 의사 되고파

조 과장은 2004년 이탈리아에서 인공관절 분야의 대가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배웠다. 2005년 독일에서도 인공관절에 대해 공부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고관절을 처음 전공하면서부터 관절경은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평소 환자들을 접하면서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관절경이라고 생각했죠. 무릎이나 어깨처럼 고관절도 관절경 수술을 통해 지금까지 모르고 지내왔던 질환들에 한 걸음 더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관절경은 발전 중인 분야입니다."

그는 2009년부터 고관절 관절경을 했다. 매년 40~50명의 환자를 수술한다. 그가 외래진료에서 만나는 환자는 연간 5천 명가량. 아직 100분의 1도 채 안되는 환자만이 관절경 혜택을 보는 셈이다. 그나마 관련 학회에서 관절경 수술과 비구순 파열 등에 대해 널리 알리고,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한 덕분에 이만한 수술도 가능했다.

최근엔 한 20대 미국인 환자를 수술했다. 영어학원 강사이고, 미국에선 태권도 사범을 했다는 이 환자는 이미 조 과장을 찾아올 때 자신의 질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아직 보편화된 수술이 아니다보니 비용 부담이 너무 컸고, 수술에 대한 믿음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이 끝난 뒤 그 환자는 조 과장에게 "놀랍다"고 했다. 몇 년간 괴롭혔던 통증이 깨끗이 사라졌기 때문. 조 과장은 "비구순 파열이나 충돌증후군은 치료하면 획기적으로 좋아지는 질병"이라고 했다. 어떤 의사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의사"라고 했다. 그는 솔직하고, 믿음을 주는 의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사진=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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