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1년을 맞은 작가 박완서 씨가 22일 오전 6시17분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지난해 가을 담낭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받아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1931년 10월 20일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고인은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중퇴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현상공모에서 '나목(裸木)'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한 뒤 왕성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한 바 있는 작가는 1988년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사별하는 슬픔을 겪었으며, 전쟁과 분단 등 시대적 아픔과 개인적 슬픔을 바탕으로 서민의 애환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글을 써왔다.
장편소설로 '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다. 소설집으로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한 말씀만 하소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등이 있고, '나 어릴 적에'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부숭이의 땅힘' '보시니 참 좋았다' 등의 동화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필집으로는 '세 가지 소원'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 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두부' '호미' 등이 있다.
지난해 7 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내면서 고인은 "작가라서 참 좋다. 손자들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 줄 수 있어 행복하다"며 자신의 황혼을 따뜻하고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1993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으며, 200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됐다. 1996년부터 2007년까지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유족으로 장녀 원숙(작가), 차녀 원순, 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 사녀 원균 씨 등 4녀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 김광하(도이상사 대표), 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 김장섭(대구대 교수) 등이 있다.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후배 문인들과 시민들은 물론 정치계와 경제계 등 각계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탤런트 최불암 씨는 "박완서 씨의 작품을 좋아했고, 데뷔작인 '나목'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도 출연하기도 했다"며 "고인은 문학계의 누나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들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의 심정을 낮은 목소리로 전해주었다"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6호,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 묘지. 02)3410-6916.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탄핵 집회 참석한 이원종 "그만 내려와라,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