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마음의 나이

대학 동아리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꾸밈없는 모습이 청순하다. 얼굴은 햇살 받은 풋사과 같다. 내게는 저런 날들이 언제 지나가 버렸을까. 아쉽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선후배가 출사여행을 떠나곤 했다. 좋은 곳을 가서도 본론은 잊고 밤바다에 취하던 그때, 선배들의 가르침은 얼마나 노련했는지 모른다. 우리도 학년이 올라가면 저렇게 될까 싶을 정도로 졸업반은 정말로 박식해 보였다. 빨리 나이를 더 먹은 후 그 자리에 서 보고도 싶었다.

의과대학 옥상에 있던 암실에서 선배 도움을 받아 작업하면서는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함께한 것 같아 가슴 뿌듯하기까지 했다. 푹푹 찌는 여름, 깜깜한 그곳에 있다가 나와 올려다본 하늘은 참 색달랐다. 미래가 저 빛처럼 신비함으로 가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시회 일로 대선배들을 찾아가면 "참 좋을 때다. 너희 때가 부럽다"고 하였다. 그때는 괜한 인사치레인 줄 알았다. 공부하기가 버겁고 매사에 미숙한 우리가 뭐 부러울까 싶었다. 지금은 출발선에 선 주자들 같은 그때로 세월의 필름을 되감아 보고도 싶다.

의사가 된 후, 우기고 싶은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선 어느 정도 문리가 트이고, 동고동락할 후배도 들어오고, 또 모르면 가르쳐 줄 든든한 선배도 있었던 때이니 말이다. 힘든 가운데서도 열정을 다하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절 생각이 나면 나는 스물일곱의 나이로 살아간다고 얘기할 때가 더러 있다. 믿어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아련한 그 시절로 가 있곤 해서다. 그렇게 소개를 한 자리에 함께했던 어느 교수님이 의아하셨던가 보다. 어느 날 전공이 나와 같은 과의 후배에게 물어보았더니 '몇 년 위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한 선배'라고 대답했단다. 민망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그 선생님은 "나는 마흔아홉이라고 하지"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누구든 머물고 싶은 나이는 있나 보다.

'남자의 나이는 자신이 느끼는 나이, 여자의 나이는 밖에서 보아주는 나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신경 쓰지 않고 마음속 나이로 살 수는 없을까.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시작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것이 자극제가 되어 일상에 청량함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도도한 강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 알차게 보내고 난 후 올해보다 내년엔 더 나아지고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스스로 나이 먹음을 축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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