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나 죽은 후에…"

퇴계 이황 선생의 마지막 말씀은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인품만큼이나 매화를 끔찍이 사랑했다. 제자 이덕홍(李德弘)이 선생의 마지막 날을 소상히 적어놓았다. "아침에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이날은 날이 맑았다. 오후 다섯 시쯤 갑자기 흰 구름이 집 위로 몰려들어 눈이 한 치 남짓 내렸다. 조금 뒤 선생님께서는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고 하셨다. 부축하여 일으키자 앉으신 채 숨을 거두셨다. 그러자 구름은 흩어지고 눈이 걷혔다."

조선의 대표 유학자답게 퇴계의 성품은 고결했다. 선생은 죽음이 다가오자 유서를 남겼다. 형식을 싫어한 선생은 먼저 조정에서 내려주는 예장(禮葬)을 사양하라고 했다. 그리고 비석을 세우지 말고 조그만 돌의 앞뒷면에다 간단하게 본관과 행적을 적으라고 주문하셨다. 어지간한 벼슬아치라면 사후에 거대한 송덕비(頌德碑)를 세우는 것이 관례였던 시절이었다.

선생은 이를 과감하게 탈피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안동(安東)에는 송덕비가 없다. 퇴계 선생이 이럴진대 언감생심 누가 송덕비를 세운단 말인가.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안동은 '송덕비 없는 양반도시'라는 남다른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선생은 사후 관리를 철저히 했다. 지금도 퇴계의 묘역은 크기에서나 단장에서나 검소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규모는 작지만 여기저기 석물이 있는 것을 보면 선생의 유지(遺志)와는 달리 선생을 받들려는 후손들과 제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자신이 죽으면 살고 있는 집을 헐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해서 화제다. 리 전 총리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죽거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고 가족과 내각에게 말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집을 남겨 둠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며 "내 집이 남으면 주변 건물을 높이 올릴 수 없어 이웃이 괴로움을 당하게 되지만 집이 철거되면 도시 개발 계획을 바꿔 주변 건물들이 더 높이 올라가고 땅값도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치 400여 년 전 퇴계 선생을 보는 것 같은 발언이다. 그러나 큰 인물의 사후 관리는 자기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역사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리 전 총리의 관저가 헐릴지 남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남긴 유언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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