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대구 남구 대명동 한 페인트 가게. '최고급 연료만 취급합니다'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흰색 승용차가 유사석유제품(시너)을 주유하고 있었다. 대구 남구청과 경찰, 한국석유관리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 단속반이 가게를 급습했다.
시너를 판매한 이모(21) 씨는 "최근 기름값이 오르면서 시너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업자들이 단속을 감수하면서까지 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가게에서 단속을 하는 15분 동안 차량 3대가 시너를 넣기 위해 가게에 들어섰다. 한 운전자는 "요즘 기름값이 너무 비싼데다 경기 불황으로 어쩔 수 없이 시너를 애용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대구주유소협회에 따르면 대구 시너 업소는 주유소 440여 개보다 두 배나 많은 1천여 개로 추정되고 있다.
◆시너 수요 폭증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시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단속기관의 적발에도 시너 가게는 계속 늘고 있다. 15주 넘게 상승행진을 하고 있는 기름값 때문이다.
지난달 5일 대구 수성구 범물동에서 차량 운전자들에게 시너를 판매한 업자가 검찰에 적발됐고, 이달 14일 달성군에서 수십억원대의 시너를 자동차 연료용으로 제조·판매한 업자가 구속됐다.
대구시에 따르면 2008년 260건이었던 유사석유판매 적발이 2009년 394건으로 치솟았고 최근 들어서는 시너 판매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
이날 단속을 벌인 남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꾸준한 단속으로 판매를 완전히 중단한 시너 가게가 많았는데, 최근 다시 문을 열고 있다"며 "고유가에 한푼이라도 줄이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이라고 했다.
◆시너 값 고공행진에 짝퉁 시너도
끝 모르고 오르는 기름값에 시너 가격도 덩달아 뛰고 있다. 시너를 만드는데 쓰이는 시너 재료 대부분이 원유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유가 상승이 시너 가격 인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너 도매상 A씨는 "도매상들은 시너 18ℓ 한 통당 운송비, 연락비 등 최소 1천원의 마진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용제(시너를 만드는 재료) 값이 뛰면 시너 가격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너는 지난해 10월만 하더라도 36ℓ에 3만4천원 선이었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면서 3만6천∼3만8천원으로 가격이 뛰더니 현재는 4만2천원 선까지 뛴 곳도 있다.
업주 B씨는 "36ℓ에 3만6천원이던 시너 가격을 지난달부터 2천원 더 올려 받고 있다"며 "자릿세가 비싼 일부 가게에선 가격을 더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너 원재료(원유) 값이 오르면서 가짜 시너를 만들어 파는 가게도 있다.
시너 공급자 김모(36) 씨는 "요즘은 시너 업계는 배달 위주의 단골 고객이 주를 이루는 추세인데 하루 아침에 가격을 높이면 손님이 떨어진다"며 "비록 불법이지만 고객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달서구에서 시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27) 씨는 "메탄 비율을 높이면 고열이 발생, 엔진을 상하게 하고 연비도 낮아지지만 어차피 시너를 장기간 넣으면 차량이 고장 난다는 점은 운전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유사석유제품 수요가 폭증하자 지난해 11월부터 유사석유제품에 대한 처벌을 1회 적발시 벌금 300만원, 2회 500만원, 3회 6개월 이상 징역으로 강화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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