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애들이랑 어머님 갖다 드릴 건데 하나만 더 넣어 주소!"
"그러면 저희가 남는 게 없어예."
"너무 빡시게 그러신다. 단골 할라 했더마…."
26일 오후 대구시 중구 한 시장 입구 국화빵 가게에서 정겨운(?) 실랑이가 일었다. 넉살 좋은 손님과 인상 좋은 주인 아저씨가 국화빵 서비스 개수를 두고 '하나 더'와 '안돼예'란 말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정다운 입씨름은 머쓱한 상황으로 변했다.
"정말 힘들어서 그러지요. 저도 많이 드리고 싶어요."
국화빵 2천원어치(10개)를 사면서 '덤'을 기대했던 손님은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웬만하면 손님들에게 인심을 베풀던 주인의 마음도 좋지 않다.
불판 앞 김기수(가명·46) 씨는 "풀빵 장사 5년 만에 요즘처럼 힘들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기가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장경기는 얼음인데다 밀가루, 팥, 가스비 등 풀빵 재료 어느 하나 오르지 않은 게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오르는 물가도 문제지만 세간 인심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게 더 아쉽다고 했다.
"저도 외환위기 때 사업을 접고 여러 일을 하다 풀빵 기술을 배워 자리를 잡았어요. 서민 생활을 왜 모르겠습니까? 경기 침체가 인심까지 앗아가고 있어요."
26일 현재 국화빵의 가격은 개당 200원. 지난해보다 40원가량 올랐다. 천원짜리 한 장 내면 국화빵 6개가 종이 봉투에 담기던 것이 올해부터는 5개뿐이다. 더 넣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그러면 남는 게 없다.
국화빵의 가격이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 국화빵의 재료인 팥과 설탕 그리고 액화석유가스(LPG) 등의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
국화빵 속을 채우는 단팥 소의 가격(3㎏)은 지난해 7천원에서 올해 1만원 이상으로 올랐다. LPG 가격 역시 지난해 20㎏ 용기를 기준으로 2만8천원에서 올해 3만9천원으로 껑충 뛰었다.
국화빵 1천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반죽 15㎏과 단팥 소 10㎏가량이 필요하다. 재료비로만 각각 3만원과 4만원 가까이 투입된다. 밀가루와 단팥 소 외 LPG, 포장재료, 임대료 등을 포함하면 겨우 인건비를 건지는 수준이다.
김 씨는 "국화빵 1천 개를 판매할 경우 18만원에서 2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국화빵 1천 개를 만들기 위해 드는 재료비를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국화빵을 1천원에 6개 팔다간 인건비도 확보할 수 없다는 것.
김 씨의 말대로 밀가루 원료인 소맥 가격은 작년 초에 비해 70% 가까이 올라 국내 밀가루값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것으로 보인다.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국의 물가 목표치 상한선인 4%에 육박하는 등 전년 동월 기준 3.9%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판매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일평균 국화빵은 약 200개에서 300개가량 팔린다. 날씨가 쌀쌀할수록 국화빵을 찾는 손님이 많아지지만 요즘 같은 매서운 한파에는 손님을 구경하기 어렵다. 상인들로선 원재료 가격 상승에 한파까지 겹친 설상가상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갈등을 겪는 풀빵 상인들이 적잖다. 내용물을 줄이고 풀빵 개수를 유지하는 땜질처방을 마련한 상인들도 있다. 대구 달서구 모다아울렛 주변 한 붕어빵 가게. 점심시간을 마치고 한창 달궈져야 할 불판이 차갑게 식어있다. 그 위에는 1시간 전 구워놓은 붕어빵 1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점심때면 옷가게 점원들과 쇼핑객들로 6.6㎡ 남짓한 가게 안이 붐볐지만 요즘은 찾는 이가 없다. 1천원에 세 개 주던 붕어빵 개수를 기름값이 오르고 재료값이 뛰기 시작하면서 2개로 줄인 까닭이다. 박지연(가명·44·여) 씨는 "밀가루 값이 계속 오를 거라 하는데 개수를 줄이면 금세 표나는 붕어빵 대신 풀빵 장사를 할걸, 그렇다고 내용물을 줄이자니 마음에 걸리고…"라며 한숨 지었다.
대구 남구 봉덕시장에서 국화빵을 팔고 있는 이일섭(가명·46) 씨 역시 좀처럼 펴지지 않는 생활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과거에는 보통 원자재가격이 오른다고 하면 500원 또는 1천원 인상이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원자재가격이 올랐다 하면 최소 3천원 또는 4천원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면 손님을 속일 수밖에 없어요."
기름값이 오르고, 밀가루 등 장바구니 물가도 오르고, 팍팍한 경제에 인심도 날로 잃어가고, 서민경제는 강철로 된 무지개가 아닐까?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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