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대통령의 시름

오늘도 심란하다. 임기가 3년도 덜 됐는데 30년은 더 된 것 같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잘 버텼다. 첫 출발 때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광우병 문제로 시끄러웠다. 전국적으로 연일 촛불집회가 열려 혹시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게다가 일부 반대론자와 과격한 네티즌들은 대통령을 동물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장 불경죄로 치도곤 하고 싶었지만 민주 사회니까, 그리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신봉하는 대통령이니까를 수없이 되뇌며 참았다.

좀 잠잠해질 만하니 전직 대통령이 투신을 했다. 나라가 벌집 쑤신 듯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전임 대통령의 정치 자금과 친인척 비리 수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정권이 바뀌면 당연한 절차이다. 민주 투사 출신인 어떤 이는 여당과 합당해 대통령이 된 뒤, 같은 당 출신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괜찮았다. 같은 당도 아닌 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은 현직의 특권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참았다. 여론이 좋지 않아 수사도 덮었다.

영원한 우방으로 여겼던 미국이나 일본에도 불만이 많다. FTA를 좀 양보해 주면 했는데 완전 오불관언이었다. 일본은 심심찮게 독도 영유권을 들고나와 심사를 어지럽혔다. 북한은 더 심했다. 전직, 전 전직 대통령 때는 방북 초청을 하면서까지 친하게 지낸 터여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전 대통령과 차별화된 우익 대통령인데 지지해준 우익을 위해서라도 적(敵)과 잘 해보자고 먼저 손을 내밀기엔 쑥스러웠다. 그렇다고 군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에다 포격까지 한 것은 너무했다. 하기야 그 때문에 우익 쪽 목소리에 힘이 실렸으니 얻은 것도 없지는 않은 셈이다.

요즘은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또 나라가 시끄럽다. 하지만 시름은 다른 데 있다. 인사청문회 때문이다. 그동안 총리, 장관,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8명째 낙마이니 새삼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야당이 대통령 체면을 너무 안 세워준다. 눈물을 머금고 최측근을 하차시켰으면 대충 넘어가도 될 일을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제출을 거부했다. 그래서 '간지'가 안 나는 것을 무릅쓰고 국회지식경제위원장인 야당의원에게 전화로 부탁했더니 거절만 당했다. 도무지 기본 예의도 없는 듯하다. 청문회에서 2승 1패라도 해야지, 1승 2패를 하라면 예선 탈락하라는 소리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2승 1패는 꼭 하겠다. 청와대 수석이 장관 직에서 낙마하는 일은 남은 임기를 생각하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이번 인사청문회 때를 생각하면 꼴도 보기 싫지만 오랜만에 '한가족'인 당정청(黨政靑) 인사와 자리를 했다. 아직 뒤틀린 심사에 쓴소리를 좀 했더니, 당 중역들이 사과를 하고, '예예' '잘 알겠습니다'라며 이구동성이다. 화기애애했다. '역시 믿을 곳은 당밖에 없구나' 싶어 내친김에 '당정청은 공동 운명체'라고 했다. 갑자기 어느 전 대통령이 외쳤던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최근 끝난 드라마가 생각난다. 원칙과 소신대로 행동하는 여성 대통령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드라마라도 현실과 동떨어지면 안 된다. 대통령이 탈당해 정치 중립을 선언하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당정청은 한가족이다. 가족 버리고 잘된 꼴을 본 적이 없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적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주장한 목민심서는 달달 외울 정도다. 문제는 권력의 속성이다. 한 번 빼앗기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늦은 법이다. 한순간이라도 밀리면 끝장이다.

이번 인사청문회 건만 하더라도 비리 의혹 후보자를 포기하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싶다. 그리고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이들을 추천한 측근부터 내치면 국민도 믿어줄 것이다. 혈연, 지연, 학연 다 버리고 도덕성과 능력이 검증된 사람만 등용하고 싶다. 그래서 퇴임 때쯤이면 격양가(擊壤歌)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아니라도 도덕적 기틀을 세운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듣고 싶다. 꿈이 아니라 솔직한 심정인데 다들 몰라줘 섭섭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우리 대통령은 오늘도 시름이 깊다.

鄭知和(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