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재박의 작명탐구] 이름을 남긴 역사속의 큰 인물 (충무공 이순신)

차가운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작전명 '아덴만 여명작전'이 떨어졌다. 지난 21일 오전 4시 58분. 최영함의 함포소리가 새벽이 밝아오는 아덴만을 깨웠다. 이어 출동한 링스헬기가 기관총으로 해적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틈을 타, UDT 작전팀이 해적에게 피랍된 화학물질운반선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하여 작전시간 5시간 만에 인질범들을 모두 제압하고 우리 측의 큰 희생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쳤다.

상황은 달랐지만, 이러한 해상에서의 '완벽 승리'는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다. 1597년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찔러 이긴 '세계 4대 해전'의 전설로 남은 명량대첩이다. 당시 조선 수군의 전선은 고작 13척에 불과했고, 명량으로 공격해오는 일본 수군의 전선은 그의 10배인 133척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단 한 대의 전선도 잃지 않고, 겨우 2명의 전사자와 2명의 부상자만을 남긴 채 조선 수군은 적선 31척을 대파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완벽한 승리를 이끈 사람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聖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 이정의 셋째 아들로 현 서울의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이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도 전쟁놀이를 즐겨하였고, 그러한 놀이를 통해 단결력과 통솔력, 그리고 자신을 지키는 수비능력을 키웠다. 청년시절에는 문무를 두루 갖춰 32세 때 식년 무과 병과 4등으로 급제, 그 해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으로 임명되어 무관으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임금과 신하가 같이 내 나라 안에서 죽는 것이 옳다." 즉, 차라리 죽을지언정 도피는 없다는 것이 그의 정신이며 곧 성격인데, 이러한 성격은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순신'이라는 이름은 오행상 금(金)의 기운이 강한 이름으로 그에게는 재성(財星)으로 작용한다. 재성은 정의와 공론을 존중하고 의협심이 강하며, 모든 일을 성실원만하게 처리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업성이 뛰어나고 전투적인 성격이니 시쳇말로 CEO감이다. 남들은 불경기라고 투덜대도 순식간에 묘책을 짜내 기업을 살리고 부하직원들을 책임지는 경영자의 자질이 왕성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가 살던 시대가 왜군의 침략으로 나라에 환란이 들었기에 그 대상이 조국이었고 백성이었다. 공인으로 살면서 백성에게 털끝만큼의 피해도 주지 않았고, 호령도 한 적 없이 그의 이름대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살다간 '이순신(李舜臣)'. 그는 전사 후 무관으로서 최고의 시호(諡號)인 충무공(忠武公)을 하사받았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이번 아덴만 여명작전의 승리에 대해 누구보다 기뻐했을 것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