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선우선을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던 1월 어느 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원래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전 미팅이 그리 탐탁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모 방송 프로그램 명이었던 '야행성'을 가진 이들이 많기 때문인데, 하지만 어쩌랴. 영화 '평양성'의 유일한 홍일점인 그녀를 찾는 언론이 줄을 잇다보니 그녀의 시간은 그녀의 것이 아닐 수밖에.
AM 10:20. 기자의 혈액형이 트리플 A형이란 것도 있지만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10분 정도 먼저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가 첫 손님인 탓에 카페 내부는 입김이 나올 정도로 아직 추웠지만 삼청동은 물론 경복궁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뷰(view)만으로도 추위는 어느새 날아가 버렸다.
AM 10:30. 정확하게, 영어식 표현으로 on-time에 그녀는 카페의 문을 열었다. 요새 유행하는 다크 블루 컬러의 패딩에 청바지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평범한 패션이지만 뭔지 모르게 스타일리시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특유의 하회탈급(?)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패션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 시쳇말로 거지같은 느낌의 스타일을 선호해요. 레이어드 많이 해서 복잡하고 지저분한, 마치 보헤미안 느낌같은 것이죠. 색깔도 혼합이 많고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고요. 그런데 막상 제게 어울리는 것은 무채색이나 골드&실버의 깔끔한 것이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그 경계를 왔다갔다 해요."(웃음)
AM 10:45.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조용한 카페를 들썩이게 했다. 사진기자가 먼저 요구하기보다 그녀가 미리 포즈를 취하는 분위기로 촬영이 진행됐다. 사진 촬영은 찍는 사람과 찍히는 이의 호흡을 맞춰야 그림도 잘나오는 것이 진리인데, 곁에서 지켜보는 두 사람의 궁합이 꽤 잘 맞아보였다.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이어지며 10여분 간의 촬영이 끝났다.
AM 11:00. 기자는 카페 주인장이 추천한 복분자 주스를, 선우선은 허브티를 두 손으로 감싸안고 마주 앉았다. 그녀가 한 모금을 먼저 넘겼다. 차를 음미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아예 첫 질문을 차와 관련한 것으로 택했다. "자신을 차로 표현한다면 뭐라 하고 싶어요?" 역시나 두 눈이 반짝이며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지었다. "차를 정말 좋아한다"고 그녀는 운을 뗐다.
"외모로만 보면 블랙티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되게 쌉싸름한 맛에 깔끔하기도 하거든요. 겉모습만 보면 차가운 듯 하죠. 제가 지금까지 해 온 작품들의 캐릭터가 주로 그랬고요. 블랙티가 그런 느낌이에요. 그런데 성격은 국화차와 비슷해요. 일할 때는 많이 예민한 편이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편안한 스타일이거든요. 촬영할 때는 책임감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있을 때는 정말 헐거워져요."(웃음)
AM 11:10. 선우선은 영화 '평양성'(27일 개봉)에서 당찬 고구려의 여장부 갑순 역을 연기했다. 갑순은 계속된 전쟁으로 온 가족을 잃고 분노에 가득 차 평양성 전투에 지원한 여인이다. 당차고 거침없는 말재주로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심리전에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아예 전쟁의 전면에서 신라에 맞서 싸울만큼 투지와 용맹으로 가득차 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포로로 끌려온 거시기(이문식 분)에게 쉴 새 없이 구애를 받으며 알콩달콩 러브라인을 만들어 간다.
"솔직히 처음부터 끌렸던 것은 아니에요. 계속 읽다보니 굉장히 재미있었고, 어느 순간 '내 것이다'란 느낌이 왔어요. 머릿속에서 막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지금까지 했던 역할과 많이 달라 덜컥 겁도 났지만 '왠지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막상 하고 보니 제 안에 내재된 것이 많던데요?(웃음) 다행히 이준익 감독님이 잘 잡아도 주셨고요. '정말 잘했다'란 생각을 촬영하는 내내 했어요."
사실 선우선이 대중들에게 제대로 얼굴을 알린 것은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그녀는 요새 유행하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때문일지 모르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이지적인 도시녀 쪽으로 무게추가 쏠려 있다. 이때문에 '평양성'에서의 여장부란 캐릭터는 의외였다.
"맞아요. 제 스스로도 30만 대군 앞에서 서거나 하는 스타일이 절대 아니에요.(웃음) 그런데 제가 무엇인가에 제대로 빠지는 성향이 좀 있어요. 어떤 때는 너무 빠져서 오해를 받을 정도니까요. '평양성' 때도 저는 완전히 갑순이가 됐어요. 제 안에 여장부 같은 성격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AM 11:30. 신묘년을 시작하며 토끼띠 스타는 누가 있을까 조사해보니 선우선도 있었다. 아무래도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았고, 그녀의 새해 마음가짐이 궁금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선우선은 거북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토끼띠의 '워너비 거북이'는 무슨 뜻일까.
"작년에는 제가 많이 게으르고 싶었어요. 정말 일부러 그랬어요. 그래서 올해는 덜 게으르려고요. 뭔가 배우고 싶었는데 못 배운 것들이 많거든요. 시간 날 때마다 부지런을 떨어보려고요. 그래서 제 스스로 토끼보다는 거북이를 닮자고 주입하고 있어요. 경주하다가 자는 토끼가 아니라 거북이처럼 꾸준히 가려고요. 올해 땀 좀 흘리겠죠?"(웃음)
AM 11: 45.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보니 서로의 잔에 채워져있던 차의 바닥이 보여 갔다. 그녀는 갑자기 기자의 잔 쪽으로 손을 뻗어 빨대로 잔을 저었다. "취재한다고 차도 많이 못 드셨네요. 몸에 좋다니까 다 드셔야죠"라며 다시 잔을 건넸다. 작은 배려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큰 감동을 주는 제스처였다.
"저는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요. 더불어 바람이 있다면 작품 안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로 대중들에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평양성'의 갑순이로 보이길 바라고, 차기작인 드라마 '강력반'을 할 때는 강력계 팀장 미숙으로만 느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선우선이 아니라 작품 속 캐릭터로 말이죠."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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