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운 혼 피어올라 서라벌 천 년 수정 앞 남산에 옥돌이 난다. 젊은 가슴 품은 뜻을 갈고 닦는 곳. 영원한 마음의 고향아…."
올해 개교 73주년을 맞는 수봉교육재단 경주중고등학교의 교가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의 교가는 5만여 수봉학원 졸업생들에게 아름답고 정감어린 메아리로 번지고 있다.
경주고는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당대 만석을 이룬 경세가이셨던 수봉(秀峯) 이규인 선생께서 1938년 4월 설립했다.
이달 9일 모교에서 열린 제38차 경주중고총동창회 정기총회를 통해 총동창회장에 취임한 김덕수(고8회·전 고려조경 대표이사) 회장은 14년 동안 부회장직을 맡아 총동창회 활동을 했지만 회장직은 아직 한 달이 채 안 된 새내기다.
그는 "이번 14대 총동창회는 수익사업을 발굴해 상징적인 동창회보다는 동문들이나 후배 재학생들에게 장학금 등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동창회를 만들겠다"면서 "내년 4월 20일 개교기념일에는 가을에 펼쳐지는 경주 남산 등반대회에 버금가는 동문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등 '움직이는 동창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한 실천방안으로 총동창회 사무실이 충효동 중심에 있는 만큼 건물을 이용한 각종 국책사업 홍보와 경주시 행정홍보 등으로 동창회의 기금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 문화계에서 이름난 동문작가들에게 작품을 기증받은 뒤 서울과 경주에서 번갈아 가며 전시회를 개최, 동문들의 기부를 유도하는 방안도 마련중이다.
◆학창시절 추억
직전 총동창회장인 5선의 김일윤(고7회) 전 국회의원은 "학창시절 슈바이처를 닮은 의사를 꿈꿨으나 의대에 떨어지는 바람(?)에 교육계에 들어와 후진 양성에 나섰다"면서 "동문들은 언제 어디서나 서라벌의 당당한 옥스퍼드 출신답게 힘차게 나아가자"고 말했다.
이상문(고18회)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당시에는 6·25전쟁이 막 끝난 후라 모든 게 모자라고 불편했다. 물자는 부족해 학교건물은 나무판자에 기름을 칠한 목조건물이어서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웠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나서 인근 백률사와 당시 야산이던 보문 등지에서 솔방울과 나뭇가지를 주워 추위를 이겼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젊음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요람이었기 때문에 행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가 오면 운동장이 배수가 안 돼 항상 질퍽거렸는데, 학생들은 학교 뒤편의 북천에서 돌을 주워 학교운동장의 흙을 파고 그 밑에 돌을 깔아 배수가 잘 되도록 만들었다. 김 회장은 "당시에 하천법이 없어 그렇지 요즘 같으면 선생이고 학생이고 모조리 구속감(?)이었다"고 말했다.
경주고뿐만 아니라 경주지역 고등학생이면 매년 가을 펼쳐지던 신라문화제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특히 신라문화제의 백미인 가장행렬은 경주지역 남녀 고등학생이 좀 더 멋진 퍼레이드를 펼치기 위한 경쟁의 무대였다.
최규동(고27회) 농협 경주시지부장은 "신라문화제는 경주의 대표적인 축제였다. 경주의 남녀고등학생들의 접촉이 많아지는 이 기간은 공식적인 연애기간이 된다"면서 "이성 간의 사랑을 꽃피우고 친구 간 의리를 꿈꾸던 청춘의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총동창회 연중행사
총동창회는 매년 10월이면 경주 남산을 오르는 행사를 한다. 이날은 전국에서 모여든 동문들과 가족 등 5천여 명이 산행에 나선다.
노천박물관으로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경주 남산의 대규모 등반대회는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주고만의 특권이다.
매년 2개 기수가 책임기수가 되는 등반대회는 다른 지역 동창회가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와 함께 각 지역 각 기수별 동창회 활동도 많다.
대구지역의 수봉산악회는 회원수가 500여 명에 이르는 대형 동창회 모임이다. 매달 산행을 펼쳐 동문 간의 우애와 화합을 다진다.
레저문화가 발달하면서 매년 상·하반기를 기준으로 경주 신라·보문컨트리클럽에서 골프대회 모임도 자랑거리이다.
또 기수마다 스승의 날에 맞춰 생존해 계시는 은사님들을 초청해 '사은회'를 가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선후배 상견례 행사도 곁들여진다.
매년 한두 차례씩 전국 동문들의 소식을 담은 동창회보를 발간해 전국에 보내고 있다.
◆동문들의 모교·이웃 사랑
경주중고총동창회 장학회는 1994년 고 최용환 당시 회장이 발족했다. 총동창회는 2014년까지 10억원의 장학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문들에게 1계좌 2만원씩 후원과 기부를 받고 있으며, 기수별 지역별 참여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각 기수별 동문들의 개인적인 모교사랑도 이어지고 있다. 정상봉(고4회·㈜신진ENG 대표이사) 동문은 경주고 모든 건물의 설계와 감리를 무료로 실시했다. 또 교내 '마음의 고향' 교가비와 교훈비도 모두 동문들이 세웠다.
총동창회 개교 50주년에는 기숙사를 건립했고, 개교 60주년에는 충혼탑과 등용문을 세워 애국심과 애교심을 고취시켰다.
이와 함께 동문회의 이웃사랑도 넘쳐난다. 경주고 선후배들로 구성된 봉사단체 '화랑회'는 매년 경주지역 어려운 가정을 돕고 있다. 2000년 경주고 출신 11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화랑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집을 고쳐주고 생필품을 전달하고 있다. 이달 26일에는 올해 첫 행사로 경주지역 다문화가정의 서울관광을 주선했으며, 매년 11월에는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은 여느 봉사단체와 같지만 화랑회는 회원과 가족 모두가 함께 동참한 가운데 봉사활동에 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후대에 이웃사랑의 모습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또 손광락(고30회) 한의원장은 매년 1천만원씩 5년째 이웃돕기성금을 경주시에 쾌척하고 있다.
◆동문들의 활약
교문을 열면 멀리 남산이 산수화처럼 한눈에 들어오며, 그 아래로 안압지와 계림, 첨성대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인왕동 경주고 자리는 신라 왕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왕궁 터다. 그래서 각 방면에서 동문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관계에는 최양식(중29회) 현 경주시장과 백상승(고3회) 전 경주시장이 있다. 백 전 시장은 1997년 10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문화계에는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가인 이현세(고21회·세종대 영상만화학과 교수) 화백과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한 김차섭(고5회) 화백, 지산 이종능(고29회) 도예가, 남령 최병익(고27회) 서예가 등이 있다.
종교계에는 2002 라몬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법륜 스님이 고21회 졸업생이다. 법륜 스님의 주례사는 결혼을 앞둔 남녀의 지침서로 오랫동안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다.
교육계에는 서영수(고7회) 한국문인협회 고문과 손봉호(고6회) 동덕여자대학교 총장, 주한수(중20회)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이상혁 서울대 수학과 교수, 신승윤 미국 사우스 다코타대 컴퓨터학과 교수 등이 있다.
정계에는 김일윤(고7회) 전 국회의원과 이상효(중26회) 경북도의회 의장이 있으며, 재계에는 정휘동(중35회) 청호나이스그룹 회장과 강동한(고26회)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이 있다.
무관으로 권영해(고4회) 전 국방부장관과 박춘택(고7회) 전 공군참모총장, 이은수(중8회) 전 해군참모총장이 있다.
언론계에는 김채한(고19회) 전 매일신문 대기자와 지국현(고23회) 전 매일신문 서울지사장,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동철 전 대구MBC 사장, 손인락 영남일보 사장 등이 있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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