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향 부모님 모시는 것 같아 기뻐요"

대구 결혼이주여성 설 전통문화 배우고, 어르신에 떡국 대접

27일 낮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성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성서경찰서 외국인 인권상담위원들이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27일 낮 대구시 달서구 신당동 성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성서경찰서 외국인 인권상담위원들이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설을 앞두고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통음식을 만들며 한국 문화를 배우는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며 한국의 경로사상을 체험했다.

27일 오전 10시 대구 남구 대명동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와 베트남의 아오자이,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성들이 떡국 만드는 법을 배우느라 정신없었다.

한 자원봉사자가 "떡을 힘껏 누르고 썰어야 모양도 예쁘고 손도 안 다친다"며 시범을 보이자 결혼 이주여성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네팔에서 온 서리따(25·여) 씨는 자원봉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라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이어 만두를 만드는 시간이 되자 이야기 꽃이 피어났다. 중국에서 온 과의방(41·여) 씨가 "중국에서는 명절이면 항상 만두를 먹는다. 만두를 예쁘게 만들면 예쁜 남편을 만난다"고 하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날 달서구 신당동 성서종합사회복지관 1층 식당에도 다문화가정 여성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오전부터 떡국을 끓여 200여 명의 동네 어르신께 제공했다. 어르신들은 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앞치마를 두른 20여 명의 여성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 그릇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날랐다.

"할아버지, 할머니 마시께(맛있게) 두세요". 서툰 한국말을 건네자 어르신들은 "아이고, 한국말도 잘하고 음식까지 잘하네. 우리 손자 며느리 삼았으면 좋았을 텐데"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8개월 전 베트남에서 시집온 프엉화(28·여) 씨는 "김치찌개, 된장국 등 다른 한국 음식은 만들어봤지만 떡국을 끓여본 건 처음"이라며 "임신 중이라 몸이 좀 불편하지만 어르신들의 웃는 모습을 보니 힘든지 전혀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식사를 대접받은 박옥자(77·여) 할머니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직접 떡국을 끓여주니 더 맛있다"며 "떡국을 만드는 것을 보니 말 그대로 곱디고운 한국 새색시"라고 말했다.

이주여성들은 잠시 고국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9년 전 중국에서 시집 온 정춘옥(34·여) 씨는 "그동안 중국에 두 번밖에 못 갔다"며 "명절 때마다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는데 이렇게 어르신들께 떡국을 직접 끓여 드리니 마치 부모님께 대접하는 것 같다"고 미소지었다.

행사를 주관한 대구성서경찰서 인권상담위원회 추광엽 위원장은 "대구에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행사들이 더욱 활성화 됐으면 한다"며 "이주 여성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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