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통큰 치킨이 있었다. 치킨 한 마리 가격이 단돈 5천원. 뭇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통큰 치킨이 판매를 시작한 지난해 12월 9일은 '계(鷄)천절'이라 명명됐다. 그러나 통큰 치킨은 세상에 나온 지 7일 만에 죽었다. 영세 자영업자 생존권을 위협하고 골목 상권을 죽인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러나 통큰 치킨은 후손을 여럿 남겼다. 통근 갈비 등 '통큰'이란 성을 쓰며 가격파괴란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줬다.
얼마 전엔 통큰 두부까지 나왔다. 롯데마트는 기존 두부보다 3배나 크지만 가격은 비슷한 1㎏짜리 초대형 두부를 내놨다. 수입콩으로 만든 300~320g 제품(1천380~1천550원)과 비교하면 100g당 가격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광고 · 마케팅 등 각종 비용을 없앤 데다 마진을 최소화한 덕분에 파격가에 선보일 수 있었다"며 "두부는 서민 식탁에 자주 오르는 반찬인 만큼 상당한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통큰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엔 통큰 넷북에 이어 통큰 넷북 2가 등장했고 각종 행사 쿠폰 등 '통큰'이 아니면 아예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소비자와 유통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롯데발 '통큰' 여진은 어디까지 미칠까?
◆왜 '통큰'인가?
롯데마트 통큰치킨 장례식이 있던 날(12월 16일), 포털사이트를 점령한 건 '통큰 넷북'이었다. 롯데마트와 중견PC전문업체 모뉴엘이 합작해 내놓은 넷북의 가격은 29만9천원. 롯데마트는 이벤트성 기획으로 넷북 1천대를 준비했다고 밝혔지만, '통큰넷북' 입소문에 힘입어 판매 5시간 만에 물량은 동이 나고 말았다.
'통큰' 효과를 톡톡히 본 롯데는 곧 이어 지난달 '통큰' 브랜드 독점을 위해 상표출원을 신청했고 '통큰'에 이어 '손큰'과 '꽉찬'에 대해서도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한 상태다.
해가 바뀌자마자 롯데마트는 또 통큰을 선보였다. 6일부터 '통큰 갈비'에 이어 10일부터 '통큰 한우'까지 최대 58% 파격할인 판매전을 열었다.
어느새 '통큰'은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파격적인 저가 상품의 대명사가 됐다. '롯데=통큰'이라는 등식 또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바로 통큰 마케팅 전략이다. 계속해서 통큰 시리즈 상품을 선보이며 고유가, 고물가 시대에 롯데마트 고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려는 포석이다.
현재 인기리에 상영 중인 무한도전이나 1박 2일 등의 오락프로들이 케이블 채널을 통해 노출 빈도를 극대화 시키는 것과 궤를 함께 한다. 개그 코드를 끊임없이 노출시켜 웃음 코드에 익숙하게 만든다는 것. 결국 생활속에 파고 든 개그 코드는 충성도 높은 시청자로 길들인다.
구제역 와중에 통큰 갈비로 비난 여론에 휩싸였던 롯데마트 역시 12일까지 300t 물량을 준비한 갈비를 단 3일 만에 매진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통큰을 둘러싼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특히 '통큰 집객 효과'에 비춰 봤을 때 투자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는 것 또한 롯데가 내심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통큰치킨에 대해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자마자 판매 중단을 선언한 롯데마트 측은 당시 "투자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 가격이 가능하지 않았겠냐"고 밝히기까지 했다.
◆통큰은 미끼다?
통큰 열풍의 후폭풍도 만만찮다.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반감도 높아갔다. 통큰이 나올 때마다 "소비자 권익을 위한다" vs "자영업자 죽이는 상도덕에 어긋난 일이다"는 갑론을박이 치열해졌다, 롯데마트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모습도 자주 연출됐다.
게다가 통큰 물량이 한정돼 있는 탓에 통큰은 미끼 상품에 불과하다는 날선 비판도 일고 있다. 통큰의 임무는 소비자가 '50% 할인된 가격'에 혹해 마트에 발을 들여 놓게 만드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소비자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장 전부터 롯데마트 앞에 장사진을 치며 '통큰' 하나를 얻기 위한 기다림은 오히려 축복이다.
업계 측은 " '통큰'이라는 브랜드 네이밍 자체가 '베푼다' '특별한 혜택을 얻는다'는 느낌을 준다"며 "특히 '한정된 물량' '제한된 시간' 등의 조건이 더해져 소비자들이 할인 행사처럼 통큰을 특별한 기회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 심리도 한몫한다. 필요해서 구매하는 소비적인 결정보다, 대중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심리가 앞서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중한 소비를 당부한다. 대구소비자연맹 관계자는 "현재 경기침체 등의 요인으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이익보다 '통큰'이라는 어감에 더 이끌리는 경향이 짙다"며 "그러나 요즘 소비자들이 합리적 소비를 하는 만큼 미끼 상품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고 따져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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