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코야마의 한일 이야기]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인가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자기 나라의 문화라는 필터를 통해서 인식하는 세계이다.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당연히 일곱 가지 색이라 생각한다. 영어권에서는 여섯 가지, 독일은 다섯 가지 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민족에 따라서는 두 가지 색이라고 답하는 경우도 있다.

또 한 다스가 반드시 열두 개는 아니다. 악마나 마녀의 세계에서는 한 다스가 열세 개다. 이처럼 같은 사실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것은 눈과 뇌의 구조에 차이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인식의 방법이 다른 것이다. 문화가 현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면, 무지개 색깔의 차이는 문화의 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평소 우리는 의식하지 않지만, 각자의 고유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와 지역에 따른 관습과 전통, 가치관은 알게 모르게 우리 자신의 인식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한국 사람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많았다. 비슷한 외모 때문인지 조금 친해지면 같은 한국인으로 취급받았다. 처음에는 그것을 기쁘게 생각했으나, 차츰 힘들게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한국인을 닮으려고 해도 결국 나는 일본인으로서의 가치관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겉은 한국인이었으나, 마음은 일본인 그대로여서 나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천칭에 교대로 추를 쌓아가듯 어느 정도 서로에게 부담을 주면서 의존관계를 더해 간다. 그래서 친해질수록 "친구 아이가" "이 정도는 봐줘야지"라는 의식이 강해진다. 한국인 친구와 약속을 하면 오랜 시간 기다리거나 바람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상대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데 슬펐다. 일본인은 친한 사이에도 예의를 갖춘다. 친할수록 상대를 배려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작은 약속도 성실하게 임하면서 상대와 신뢰를 쌓아 간다. 머리로는 일본과 한국의 이러한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 한국인을 마음 편하게 사귀지 못하고 애를 태우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는 생각과 가치관, 언어생활, 행동양식 등을 총칭한다. 우리는 자기가 속한 집단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집단의 문화를 익혀야 한다. 이 과정을 문화화(文化化)라고 한다. 자국의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그러나 다른 문화를 가진 상대를 접할 때에는 자신을 문화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상대 국가의 언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면서도 자국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을 고집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자기 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며, 자국의 문화를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문화화가 부족한 때문이다.

나는 대학 졸업 후 호주에 유학했을 때 처음으로 차별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차로 가까이 접근을 해온 현지 젊은이들이 갑자기 경적을 울리고 "아시아 사람은 돌아가라"며 계란을 던졌다. 그때까지 차별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차별에 대한 가치관이 계승되어 온 집단에서는 차별도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문화에 대해서는 우열이나 선악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문화이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잘못된 관행이 계승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화라고 할 가치가 없다.

일본에는 인종 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이 아직 사회의 이면에 뿌리박고 있다. 문화라는 보호막 속에서 계속되는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문화 그 자체를 크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현대에서는 문화의 고유성보다는 그것이 윤리적, 현실적 그리고 객관적 보편성이 있는 문화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인종 차별과 같은 자기가 알게 모르게 체득한 문화는 자기 문화 속에서는 별 저항 없이 통용될지 모르나, 그것이 계승되어야 할 문화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화의 다양성이 커질수록 자문화를 상대화해야 할 필요도 커진다. 다문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화에 대한 이해도 달라져야 한다.

요코야마 유카(도호쿠 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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