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가 잠든 사이에

친정집엔 커다란 용설란이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버지는 화분들을 넓은 마루 한구석으로 들여놓으셨다. 용설란은 눈치도 없이 얼마나 잘 자라는지 동생들까지 함께 옮겨도 무서울 만큼 가시가 대단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해마다 첫추위가 닥칠 즈음, 나는 학교에 있다가도 '화분 옮길 때가 또 되었구나'하는 걱정이 앞서곤 했다. 오죽하면 단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할 뿐인 식물에 배은망덕하다는 원망까지 했을까. 온 식구가 달려들어 옮겨주는 성의도 모르고, 그러잖아도 상처 나기 쉬운 겨울 피부를 사납게 그어 놓는지. 내가 긁혀도 아프지만, 동생이나 가족 중 누가 다쳐도 아픔은 똑같았다.

추위의 기습이 대단하던 토요일 밤, 밀린 일을 하던 나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딱 4시가 되는 것을 보고 불을 끄며, 생각 없이 보일러도 끄고 말았다. 낮 동안 난방이 된 아파트는 밤을 지내기에 문제가 없었기에 습관이 된 터였다. 그리고는 특히 휴일 아침잠이 없는 남편이 일어나기까지는 채 4시간이 되지 않는 동안이다. 잠결에도 그의 움직임이 심상찮아 벌떡 일어나보니, 수도 배관이 얼어있었다.

요란스런 일기예보를 남의 일이거니 흘려버린 무심함을 아무리 후회해도, 겨우 4시간도 견디지 못해 꽝꽝 얼어버린 허술한 시공이 아무리 야속해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10년이 넘도록 동파 신경 한 번 안 쓰고 살았으면서, 순 날림공사란 배신감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참 어지간히 옹졸하다. 그저 남을 탓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억울해 하고, 아이처럼 불평하고 투덜거린다.

추위가 한풀 꺾였는지 세탁기도 녹은 오늘, 며칠 묵혀놓은 빨래를 널며 문득 베란다 화분에 눈이 갔다. 대부분 명색이 열대식물들이건만 몇 년째 한 번도 실내에서 월동시킨 적이 없다. 다만 꽃이 피면 며칠씩 들여놓고 주인 된 호사를 누렸을 뿐인 이들의 초록빛이,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시원찮아 보여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도대체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것일까.

얼마나 추웠을까. 그 옛날 용설란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될 여리고 순한 것들이, 이 지경이 되도록 식물들의 외침을 듣지 못한 나의 미련함이 싫다. 내가 잠든 사이에 축복처럼 눈 내리고 꽃이 피고, 아이들 키가 자라고, 먼 나라에선 대통령들이 지구의 평화를 논의하며 손을 잡고, 어제의 아픔을 지워주는 해도 떠오르지만,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는 내 손길을 안타깝게 기다리고 또 원망할지도 모른다. 문 밖에서 울고 있는 이는 없을지, 이 세상 깨어있는 동안 따뜻하고 섬세하게 돌아봐야겠다. 흙 속 저들의 뿌리는, 깨어있는 오늘 내 마음 알아줄는지.

윤은현 경일대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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