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생애 마지막 나날은 극적인 전환과 비극으로 가득 찼다. 동유럽에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던 1989년 12월 중순, 해외 순방 중이던 차우셰스쿠는 티미쇼아라에서 소요가 일어났지만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귀국 후인 21일 수도 부쿠레슈티의 공산당중앙위원회 건물 발코니에서 11만여 명의 군중을 상대로 소요를 규탄했다. 그러나 군중들의 박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의 함성과 야유로 바뀌었다. 그는 발포를 명령했지만 군대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탈출에 나선 차우셰스쿠는 자신을 호위하는 군인들에 의해 혁명 세력에 넘겨져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악명 높던 부인 엘레나와 함께 총살형에 처해졌다. 1965년 집권한 차우셰스쿠는 소련과는 다른 독자 노선을 걸으며 호감을 얻었지만 점차 국민들을 억압하고 경제가 파탄 나면서 24년 철권 통치를 죽음으로 끝맺어야 했다.
독재 정권은 강고하게 유지되는 듯하다가도 순식간에 종말을 맞는다. 자유가 제한되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고 경제도 흔들리게 되면 억눌렸던 불만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봉기의 불길은 급속하게 번지게 된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서 촉발된 혁명의 불씨가 이집트와 예멘 등 다른 독재 국가들에도 번지고 있다. 특히 이집트는 시위가 확산된 지 며칠 만에 100여 명의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무바라크 정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지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중동 전쟁 때 이집트 공군의 영웅으로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되자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했다. 그는 국민의 정치활동 금지, 언론 검열 합법화 등을 골자로 한 비상사태법을 바탕으로 30년 권좌를 굳건하게 지켰으나 이제 마지막에 다다른 듯하다.
이집트 등에서 확산되는 민중 시위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그는 김정은에게 유례없는 3대 세습을 이어가려 하고 있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차우셰스쿠가 비극적 최후를 맞았을 때에도 김일성과 김정일은 두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차우셰스쿠는 김일성의 통치에 영감을 얻어 김일성 궁전을 모방,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문화궁전을 지었고 주민을 감시하는 김일성식 통치를 도입, 몰락의 길을 재촉했었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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