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할머니 국숫집과 6억 원

'내가 먹은 칼국수 한 그릇, 만두 한 개가 어르신들의 노후를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칼국수 식당 '면(麵)사랑 2호점'의 구호다. 겨울 해풍이 세찬 포스코 앞 해변 소나무 숲 길모퉁이, 네댓 평 될까 말까한 자그마한 국숫집 '면사랑 2호점'이 서 있다.

개업한 지 석 달이 채 안 된다. 자그마한 식당에 주방장과 서빙하는 직원은 10명. 모두 60대에서 많게는 70세 넘은 할머니들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포스코, 포항시가 경북도민 성금과 지정 기탁금으로 할머니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칼국숫집을 꾸려 드린 거다. 메뉴는 칼국수, 찐만두, 해물파전에 잔치국수가 전부다.

2천500~5천 원짜리 메뉴만 있는 자그마한 식당에 직원이 10명이나 되면 무슨 수로 타산을 맞추나 의문이 든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하루 근무 조는 3명, 돌아가며 근무한다. 할머니들이 힘든 식당일을 매일 하기엔 힘이 부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고 적은 소득(월 20만원 남짓)이나마 나눠 갖게 하자는 뜻에서 근무 조를 갈랐다.

말이 할머니들 식당이지 영업 스타일은 웬만한 호텔 레스토랑 경영보다 더 선진화(?)돼 있었다. 주방 옆 벽에 매달린 일일영업일지에는 메뉴별 판매 수량과 카드와 현금 결제를 구분하는 매출 형태는 물론이고 식재료 구입 단가, 운영비, 관리비의 지출 내역까지 적혀 있었다. 출퇴근부와 요일별 근무 조를 짜둔 근무 상황표도 있다. 하루 매상 6만 원에서 10만 원 남짓한 미니 식당에 이런저런 장부는 웬만한 기업체 경영 팀 장부 뺨친다. 그것뿐 아니다. 고객들(대부분 포스코 직원)에게는 '축복의 앙케이트'라는 설문조사도 한다. 음식의 맛 평가는 물론이고 접객 태도, 청결도 등 고객 만족도를 분석한다. 그런 동화 같은 어르신 국숫집 창업을 도운 공동모금회 경북지회가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 희망 나눔 캠페인 모금 목표 달성이 어려워져서다. 구제역으로 발이 묶인데다 지난해 일부 타 시도 공동모금회의 노래방 구설이 터진 이후 국민들의 신뢰와 애정이 식은 탓이다.

그러나 전국 모금회 지회 중 유일하게 단 한 건의 부정 지출이 없었던 경북지회는 모진 놈 옆에 있다 도매금으로 벼락을 맞은 억울함이 있다. 더구나 경북 모금지회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금 목표 '12년 연속 달성'을 해낸 실적을 갖고 있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어려운 안동, 의성, 예천, 영주, 군위, 문경, 울릉군 등 경북 북부 지역 도민들의 성금 기탁률이 전국 어느 시도민보다 높았다. 잘사는 큰 부자 도시보다 베푸는 마음으로 사는 작은 시골이 더 아름다운 마을임을 보여준 것이다.

경북모금회가 12년간 전국 1위의 모금 기록을 유지해온 첫째 이유는 경제 기반이 좋은 타 시'도 주민보다 살림은 어려워도 마음을 나눌 줄 아는 경북도민들의 큰 배포와 구휼 정신 덕분이 크다.

그런 자랑스런 경북 지역의 공동모금회가 2월 중으로 마감되는 희망 나눔 모금 100% 목표 달성에 애를 태우고 있다. 현재까지 모자라는 돈은 딱 6억 원이다. 270만 도민이 250원짜리 자판기 커피 1잔씩만 아껴 도와주면 13년 연속 전국 1위가 될 수 있다. 새해 들어 100만 원을 기탁한 생후 두 돌짜리 아기부터 어머님의 유산에서 3천만 원을 기부한 자녀, 최우수 공무원상으로 받은 상금을 낸 공무원, 장애의 몸으로 오징어를 잡아 모은 돈 1천만 원을 낸 '손 없는 어부' 최기철 씨 등이 마음을 보태왔다.

올해 또 한 번 100% 달성을 이뤄내면 할머니들의 일자리를 얻어줄 수 있는 면사랑 3호, 4호, 5호점도 계속 세워질 수 있다. 그래서 12년 동안, 전국 최고의 따뜻한 가슴을 보여 온 자랑스런 경북도민 모든 분들에게 부탁드려 본다. 13번째 전국 1위의 긍지와 면사랑 할머니 국숫집을 위해 설 세뱃돈, 자판기 커피값에서 1%의 사랑만 나눠 보내주십사고…. 053)980-7800, 설 연휴에도 받겠다는 모금회 전화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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