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응급실에 대한 변명

응급실 취재를 갔다가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배달 음식이 도착한 지 30분이 넘어서야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담당 교수가 말했다. 따뜻하던 음식은 온기를 잃었고, 누군가 시킨 칼국수는 퉁퉁 불어서 우동 면발이 돼 버렸다. 어차피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니 끼니만은 꼭 챙기라고 교수가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 누구 하나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교수나 식어버린 늦은 저녁을 먹는 전공의나 제때 뜨거운 끼니를 챙기기가 쉽잖다는 것은 알고 있다. 기자가 옆에 있어서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듯 싶었다.

응급실 안쪽 풍경도 등장인물이 다를 뿐 엇비슷한 상황이다. 다행히 이날은 응급환자가 평소 정도였다. 갑작스레 중증 응급환자가 들이닥쳐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아니었고, 빨리 진료하지 않는다고 고함을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진료를 받아야 할 환자, 1차 진료를 마쳤지만 입원실이 없어서 기다리는 환자, 이런 환자들을 지켜보며 속만 태우는 가족 등으로 응급실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기도 했고, 무겁게 내려앉은 파장 분위기의 장터 같기도 했다.

응급실에는 늘 같은 색깔의 공기가 떠돈다. '불만'이라는 거무칙칙한 색깔이다.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찾아온 환자라면 빨간 약 바르고 붕대 칭칭 감고난 뒤에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장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해도 환자 누구나 통증이나 고열, 불안감에 시달린다. 한시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의사들도 바쁘다. 환자가 "아이고! 나 죽네"하며 금세 죽을 듯 하소연한다고 해서 의사도 "아이고! 큰일났네"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태연한 척한다.

그러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거무칙칙한 '불만'의 색깔은 가실 줄 모른다. 응급실이, 특히 대구지역 응급실이 동네북이 돼 버렸다. 누구나 입 달린 사람은 '응급시스템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어떤 의사는 "환자가 응급이라면 모두 응급환자"라고 말하고, 다른 의사는 "그렇게 되면 넘쳐나는 환자들로 응급실이 폭발할 것"이라고 말한다. "응급실에 온 환자는 무조건 거기서 치료해야 한다"는 쪽이 있고, "더 빠른 진료가 가능하다면 그리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는 쪽도 있다.

누구의 말이 옳다고 해야 할까? 응급의료시스템을 바로잡겠다면서 보건복지부가 팔을 걷고 나섰고, 대구시도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내놓았다. 사실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부터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일촉즉발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나니 '그래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지역 병원 응급실을 흠씬 두들겨 패고 있다.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현실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병원이 자선단체나 군대나 되는 것처럼 '봉사와 희생'을 강요하는 식이다.

병원과 의사가 잘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1차 책임은 분명 거기에 있다. 하지만 못내 씁쓸하다. '언 발에 오줌누기'식 대책들뿐이다. 왜 발이 얼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의사에게 따뜻한 식사할 시간을 줘야 하고, 환자에게 제때 진료받는 믿음을 줘야 한다. 인력과 시설을 늘리려면 돈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도 어려운데 어디에 돈이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엉뚱한 곳으로 새는 돈만 막아도 재원은 충분하다. 응급실 문제는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화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김수용(사회1부 차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