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존·달인 넘어 '종결자'…당신은 어떤 종결자?

'종결자' 양산 시대…누가 뜨고, 왜 띄울까

요즘 언론에서는 온통 '종결자'라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섹시 종결자, 고음 종결자, 동안 종결자, 몸매 종결자에 투기 종결자까지…. 내로라하는 인사 중에 '종결자'라는 호칭 한번 불려보지 못한 사람은 '유명인' 축에 속하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해부터 최고의 인기어에 이름을 올린 '종결자'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만큼 월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칭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최근에는 단어의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하면서 '좋다'는 표현에는 마구잡이로 '종결자'가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별별(別別) 종결자

최근 삼촌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아이유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3단 고음'을 선보인 후 '고음 종결자'로 등극했고, 중년 탤런트 김갑수 씨는 시트콤에서 여장을 한 뒤 '패러디 종결자'로 불렸다. 탤런트 송승헌은 현재 출연중인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서 환상적인 복근을 선보여 '복근 종결자'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탤런트 김혜수는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해 '자연 미인 종결자'로 불린다. 또 카라의 막내 강지영은 젖살이 빠진 모습을 공개해 '젖살 종결자', 완벽한 보디라인을 자랑하는 가수 지나와 탤런트 김사랑·이채영·모델 장윤주는 '몸매 종결자'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종결자' 호칭이 꼭 부러움의 대상에만 붙는 것은 아니다. '마이 프린세스' 제작발표회에서 연기력 논란에 대해 질문받은 김태희는 "(대신) 외모를 가졌잖아요"라고 말해 '망언 종결자'로 올라섰다. 슈퍼스타 K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존박은 연예계에서 '대두'로 유명한 개그맨 컬투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이들에 뒤지지 않는 머리 크기로 인해 '대두 종결자' 인증을 받게 됐다.

이런 '종결자' 호칭은 연예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배우자가 산 땅마다 값이 올라 투기 의혹을 받으면서 '재테크의 귀재'라는 별명과 함께 '투기 종결자'로 명명됐고, '보온 안상수' '방역 이재오' 등은 '정치개그 종결자', 가수 태진아·이루 부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금품을 요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작사가 최희진 씨에게는 '거짓말 종결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런 '종결자' 이름 붙이기 놀이는 사실 인터넷 패러디물을 통해 널리 회자됐다. 인터넷 유머에서 '정말 재미있다'는 의미로 주제에 따라 '~ 종결자'란 제목을 붙이곤 하는 것. 패러디 사진에 '패러디 종결자', 하루 놀이 등의 시리즈 물에는 '시리즈 종결자' 등의 제목이 생겼다. 그 중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판매 중단 이후 쏟아져 나온 패러디물 중 단연 인기를 얻었던 것은 '통큰 도룡기' 영상으로 '통큰 패러디 종결자'로 불렸다. 대만 드라마 '의천도룡기'에 자막을 입힌 '통큰 도룡기-통큰 치킨의 최후'라는 6분 40초 분량의 패러디 영상이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패러디의 최고봉으로 등극했다.

◆더 이상 경쟁이 무의미한 최후의 1인

'종결자'는 사전을 찾아보면 '일을 끝냄, 결료(結了)'를 뜻하는 '종결'(終結)이라는 단어에다 사람을 의미하는 '자(者)'를 더한 말로 '매듭을 짓는 최후의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의미상 평화로운 마지막보다는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 인한 논란의 종식이라는 뉘앙스가 더해져 있다.

이런 '종결자'라는 단어가 처음 확산된 것은 이우혁의 소설 '왜란 종결자' 때문으로 보고 있다. 1998년 출간된 이 판타지물은 '종결자'라는 강렬한 제목으로 더욱 독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또 하나의 유래는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에서 '터미네이터'를 '종결자'로 번역하면서 이 단어가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최근 종결자의 의미는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만큼 월등한 능력이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쪽으로 변형됐다. 일종의 '최강'이라는 수식어의 하나로 사용돼 특정 단어 뒤에 붙어 해당 분야의 최고라는 뜻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고만고만한 다른 사람이나 제품 사이의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존재라는 의미다. 비슷한 방식으로 최근 컴퓨터 게임 등에서는 '최강의 적'을 뜻하는 '끝판왕'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사실 최고 일인자를 위한 수식어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달인'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였다. 한 방송에서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각 분야 최고의 고수를 찾아냄으로써 인기를 얻기 시작한 '달인'이라는 단어는 개그맨 김병만이 '달인'이라는 패러디 코너를 만들어내면서 더욱 많이 쓰였다.

'지존'(至尊)이라는 말도 한 시절을 풍미했다. 원래 옛날에는 '임금'을 높여 이르는 말로 쓰였지만, 요즘은 '최고 중의 최고'라는 말로 사용된다. '본좌'(本座)라는 말도 한때 인터넷에서 '고수'를 뜻하는 말로 자주 사용됐다. '본좌'라는 말은 무협지에 흔히 나오는 말로 자신을 높여 일컫는 말이지만, 신세대들에게는 그 의미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실력, 능력, 외모 등이 매우 뛰어나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출중할 때 '본좌'라는 말을 붙이기도 한다. 한창 '본좌'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 김명민은 '연기 본좌' '명본좌'로 불리며 최고의 명연기자임을 인정받기도 했다.

최고를 수식하는 '본좌' '지존' '달인'이라는 단어에는 무조건적인 찬양과 부러움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약간의 체념이 함께 내포돼 있다. 하지만 최근 유행하고 있는 '종결자'는 '더 이상 경쟁할 필요가 없는 최후의 1인'이라는 뉘앙스 때문에 '한 분야의 최고'라는 긍정적 의미뿐 아니라 극단의 부정적 의미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진정 실력을 갖춘 '종결자'는 어디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종결자'를 검색해보면 정말 별별 종결자들이 쏟아진다. 가히 '종결자 홍수시대'다. 언론이 마구잡이로 '종결자'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다 보니 이제는 '종결자'가 말 그대로의 '최후의 1인'이 아니다. 외모 종결자가 수십 명이고, 하루아침에도 몇 명의 몸매 종결자가 새롭게 등극한다. 제품을 홍보하는 데도 '종결자'라는 단어가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신문·방송들이 앞다퉈 '종결자 놀이'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며 "너무 흔하게 쓰다 보니 이제는 '종결자'에 신물 날 지경"이라고 했다.

이것은 '종결자'라는 단어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마케팅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연예인이나 제품이 어떤 이슈를 선점하면 후발 주자들은 '제2의 ○○'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종결자'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본래 이슈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제품보다 한발 더 진일보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짝퉁'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것)'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쓸 데 있는 곳에서 권위가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쓸데없는 곳에서 권위를 찾았다"고 분석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고수에 대한 찬양은 있어왔지만, 지금은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 찾기 놀이'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는 것.

사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고수'라 불리려면 그만큼의 내공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명불허전'(名不虛傳·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퍼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우리네 서민들이 그러한 것처럼 한 가지 일에만 수십 년을 천착해 그 일이 몸에 배어 혼연일체의 경지를 보여주거나, 거문고를 뜯으면 학이 내려와 앉는 황홀한 연주실력쯤은 뽐내야 하는 일 아닌가. 지금의 '종결자'들은 진정 '종결자'로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