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 고향을 찾은 이들은 오랜만의 포근한 날씨 속에 가족들과 함께 신묘년 새해를 즐겼다. 그러나 취업준비생들은 귀향도 포기한 채 도서관에서 설날을 보냈다. 설 연휴 동안 명암이 엇갈린 두 곳을 찾았다.
◆긴 연휴 속 가족 사랑
3일 오후 1시 대구 중구 2·28기념공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팽이치기에 열심이었다. 팽이가 넘어지면 어디선가 아버지가 나타나 팽이를 다시 돌려주고 채를 아이에게 넘겼다. 어느새 아이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우리나라의 민속놀이가 신기한 듯 외국인들도 즐거운 얼굴로 지켜봤다. 아들에게 투호를 가르치던 손정환(37) 씨는 "설 명절 고향을 찾아서 어릴 적 놀이도 체험하고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너무 즐겁다"고 웃었다.
설 당일 오후 대구 도심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거나, 오전에 새배를 마친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달가량 이어진 한파가 가시고 포근한 날씨가 찾아오면서 많은 시민들이 도심 곳곳에 나와 명절 오후를 만끽했다.
대구백화점 앞에도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향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라 모두 설렌다고 했다. 서재훈(27) 씨는 "그동안 취업이 되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얼마 전 취직을 해 이번 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한턱내려고 한다"고 웃었다.
인근 한일극장 매표소는 오후부터 엄마 팔에 매달려 영화를 고르는 아이들, 할아버지와 함께한 대가족 등 영화를 보려는 가족들이 줄을 이었다. 이승대(41) 씨는 "차례 준비에 고생한 아내를 위해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려고 나왔다"며 "항상 명절이면 차례만 지내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번 설은 연휴가 길어서 느긋하게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한일극장 최병훈 운영매니저는 "오후부터 가족단위 손님들이 크게 늘었다"며 "휴일에는 젊은 연인들이 극장을 많이 찾는 편인데 이번 설은 긴 연휴 덕인지 아이들과 함께 오는 부모들이 많다"고 말했다.
◆설도 취업 앞에선 뒷전
4일 오후 2시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캠퍼스 안은 방학과 설 연휴로 사람을 구경하기 힘들었다. 인적이 끊긴 한적한 캠퍼스였지만 도서관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열람실 안으로 들어서자 100여 명의 학생들의 공부 열기에 또 한 번 놀랐다.
전화번호부만큼 두꺼운 책을 펼쳐 놓은 오지현(27·여) 씨는 명절에도 고향인 경주를 가지 않고 자격증 시험 공부에 열심이었다. 오 씨는 "증권투자상담사 자격시험이 20일에 있어 이번 설에는 집에 못 간다고 미리 연락해뒀다"며 "친척들이 '언제 취직하느냐? 시집은 안 갈 거냐?'라고 물어봐서 고향에 가도 불편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2009년 9.8%의 청년실업률로 16개 광역자치단체 중 최하위를 기록한 대구는 지난해 청년실업률도 9.1%로 나타나 심각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역 대학 도서관에는 긴 명절 연휴도 반납한 취업준비생들로 넘쳤다.
계명대 도서관에서 만난 한정민(28) 씨는 "사촌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해 비교 당할 것 같아 설날 당일 아침부터 차례만 지내고 부리나케 집을 빠져나왔다"며 "남들은 연휴가 길어서 좋다고 말하지만 우리 같은 취업 준비생에게는 오히려 곤혹이다"라고 말했다.
4월로 다가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지운(29)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취업 공부와 학원 수업 때문에 고향을 가지 않았다"며 "올해는 꼭 취직해서 추석에는 기분 좋게 고향에 가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사진.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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