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전서(篆書)

전서(篆書)는 중국 주나라 때 만들어졌다. 이전의 문자를 정비한 것이다. 중국을 처음 통일한 진(秦)은 체제 정비의 방편으로 문자를 정리했다. 각 지방에서 사용하던 글자 모양을 통일하고, 이전의 전서를 보강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주나라 때의 것은 대전(大篆), 진나라 때의 것은 소전(小篆)이라 한다. 그러나 전서는 쓰기가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려 불편했다. 그래서 이를 줄인 예서(隸書)가 나왔고, 날려 쓰는 초서(草書)가 나왔다.

한글을 어떻게 이러한 서체로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글 서예 역사에 따르면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에 한글이 만들어지면서 서체도 이를 따랐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미 전서를 사용하지 않고 새로 만든 해서(楷書)와 행서(行書)를 초서와 함께 사용했다. 다만 복고 바람이 불면서 전서는 학문적인 연구 대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 한글에도 전서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행정안전부가 모든 공문서에 찍는 관인을 한글 전서체에서 한글로 바꾸기로 했다. 찍혀만 있을 뿐 내용이 무엇인지 아예 알아볼 수 없던 도장을 읽기 쉽게 바꾸겠다는 것이다. 관인을 전서체로 만든 것은 1948년 정부 수립 뒤부터다. 1963년에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었으나 역시 전서체여서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공문서의 도장을 국민이 알기 쉽게 하는 데 무려 60년이 걸린 셈이다.

한번 관행을 만들면 고치기가 이렇게 어렵다. 요즘이야 컴퓨터로 작업을 하지만 활자를 뽑아 신문을 제작하던 시대에는 많은 용어가 일본어였다. 신입 사원을 뽑아도 일본어 단어로 가르치다 보니 쉽게 고쳐지지 않아 아직도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관행이라는 이유로 소수 집단만 사용하는 것들이 많다. 법원이나 검찰, 공무원이 사용하는 한자 투의 문서나 의사의 영어체 용어와 날림 글씨가 그렇다. 판결문이나 처방전을 보면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주눅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관행은 대부분 소수 집단의 권위를 위한 것이다. 마땅히 버리거나 고쳐야 하지만 아직도 권위를 위해 소통보다는 폐쇄를 선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점에서 이번 행안부의 관인 서체 바꾸기 작업은 사소하지만 중요하다. 정부의 뜻만 있으면 국민의 불편함을 쉽게 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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