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배신의 계절'과 리더십

설 연휴 동안 오랜만에 대구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대화의 주제로 올랐다.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대구 부동산 시장, 연일 신고가를 쓰고 있는 주식시장, 자녀 교육 등이 40대들의 주 관심사였다.

정치부 기자인 탓에 신공항의 향배나 총선과 대선에 대한 질문도 받긴 했다. 하지만 '며느리도 모른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맞춘 무속인이 올 연말쯤 누구도 예상 못했던 잠룡이 떠오를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았다더라"는 '카더라 방송'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부족한 내공을 감추기 위한 설레발이었음을 고백한다.

하긴 정치권 주변에는 자칭타칭 '고수'가 많다. 예측불허였던 지난해 6'2 지방선거, 7'28 재보궐선거의 승패도 자신은 정확하게 맞혔다며 심오한 공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어떤 이는 벌써 내년 대선에서 누구누구는 안된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호의 고수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달 25일로 집권 4년차에 들어가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lame duck)은 차츰 가시화되고, 정치권의 이합집산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4'27 재보선 이후에는 여야 잠룡들의 권력 투쟁이 노골화될 것이라는 것쯤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어느 인사는 "배신의 계절이 돌아왔다"고도 표현했다.

사실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한국 정치판에서 임기 3년차를 마친 대통령이라면 국정 운영에 있어 절대고수의 반열에 오를 법하다. 취임하자마자 '촛불 시위'로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 대통령도 '4대강사업 논란' '세종시 부결' 등 굵직굵직한 난제들과 맞부딪치며 단련됐을 것이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대기업 CEO에 올랐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만큼 '성과'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도 여전하다.

설 연휴 직전 신년좌담회에서 개헌 필요성을 강력하게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개헌은 실현가능하고 안 하고 이전에 시대에 맞게 하는 것이 맞다"는 말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한민국이 미래지향적으로, 국운이 융성해서 좋은 계기에 (개헌)하자"는 대목에서는 역사의 평가를 앞둔 대통령의 조바심마저 느껴진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밝혔듯 대통령은 지금 할 일도 많고 헌법에 매달리면 다른 일을 못한다. 경제도 살려야 되고 물가도 잡아야 된다. 경색된 남북 관계도 풀어야 하고, 양극화에 따른 사회 갈등과 망국적인 지역 대결 정치구도도 해결해야 한다. 높아진 국격만큼 국민의식도 높여야 되고, 복지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연휴 중 온 국민들의 관심을 모은 뉴스메이커는 단연 석해균 선장이었다. 설날 잠시 의식을 회복했다가 다시 인공호흡기를 달았다는 '아덴만의 영웅' 소식에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흔히들 '리더'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에 비유한다. 선장이 올바른 항로로 이끌면 배는 폭풍우 속에서도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지만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항해는 실패로 끝나고 만다. 정치역사학자인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는 리더십을 '소명'(calling)이라 일컬었다. 리더십은 주어진 조건에서 그 이상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는 전국 단위 선거 없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게 이 대통령의 평소 생각이지만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내년은 총선에다 대선이 겹치는 큰 판이다. 대격변이 불가피하다. 이럴때 일수록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한다. 핵심에 집중하고,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2007년 12월 19일 자신에게 표를 던진 1천149만2천389명의 국민이 맡긴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볼 때다.

이상헌(서울정경부 차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